[구름의 역사] 62. 구름을 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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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1970년대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였던 가지야마 도시유키.

동아일보 호현찬 기자가 연락해 왔다. 1966년이었던가. 광복 후 처음으로 가지야마 도시유키라는 일본 작가가 왔는데 만나보겠느냐는 것이다. 운당여관에 묵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갔더니 몇명의 기자가 와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일본이 우리한테 심한 짓을 한 과거가 있어. 일본 사람 전체를 대표해 사과할 용의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당장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했다.

"전 일본인을 대표해 지난날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고개를 못 든다.

나는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의 두 눈에 번쩍이는 것이 있는 듯 했다.

"잘 왔소, 잘 왔소."

그리고 우리의 우정은 싹텄다.

그는 '이조잔영'이라는 자신의 소설책을 내게 주었다. 문예춘추사에서 펴냈다. 그 책에는 '족보'라는 소설도 들어 있었다. 전자는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중 출신이었다.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을 때 얻은 약간의 자료를 일본으로 가져가 소설로 썼다는 것이었다. 기자들 이야기로는 그는 일본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유명작가라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조잔영'은 한국의 미를 그려본 것으로 품위가 있었다. '족보'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제 말기에 우리가 창씨개명의 난국에 처했을 때의 이야기다. 설진영이라는 부농이 있었는데 조선군 사령부에 수백섬의 쌀을 헌납하면서도, 700년을 이어온 설씨 집안의 족보는 바꿀 수 없다고 버티다 끝내 자살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우리 문학에 그 시대 상황을 그린 작품이 있었던가. 놀라운 고발이다.

그는 한.일 합작으로 '이조잔영'을 영화로 만들기를 원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뒷날 신상옥 감독이 일본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인 마쓰야마 젠조에게 각본을 부탁해 영화화했다.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북한에 있는 동안 이것을 일본 TBC에서 한국영화 제1호로 방영했으니 희한한 운명의 영화가 되었다.

광복 후 20년이 지났는데, 일본과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다는 건 현대인으로서하나의 수치라고 생각했다.

66년으로 기억된다. 가지야마가 부인을 데리고 서울에 왔다. 이진섭 부부가 주로 안내했다. 기모노를 입고 거리에 나왔을 때 서울 시민들은 희한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얼마 후 마쓰야마가 한국에 왔다. 아카데미극장의 방우영 사장과 극동극장의 차태진 사장, 그리고 나는 가지야마.마쓰야마와 함께 경주에 갔다. 들판에는 누런 벼이삭이 물결치고 있었다.

67년 문예춘추 사장의 초청장이 왔다. 이진섭과 함께였다. 신원 조회에 걸린 것을 중앙정보부 7국장인 김기완이 해결해 주었다. 20여년 만의 일본 방문이 가능해지는가. 흥분할 일이었다.

한국일보 연재소설 '대야망'을 끝냈다. KBS TV에선 '아로운'을 방영하고 있었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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