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마광수의 팔자論-운명은 野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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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나도 예상치 못한 풍파를 겪게 되어 『운명』이라는 제목의 철학적 전작 에세이를 출간한 바 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운(運)」이라는 말이 사사건건 따라다니는사회도 없다.지칠줄 모르고 계속되는 대권(大權)논의에서도 언제나 결론으로 삼는 것은 「누가 대권을 잡을 운을 타고났느냐」다.우리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점치(占治)다.
나도 어려서부터 주역을 읽어 간단한 점을 쳐봤다.그러나 한평생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아니,그런 생각에서 애써 벗어나려고 노력했다는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운명이라는게 있다면 그 반은 유전인자의 소치요, 나머지 반은야(野)한 잠재의식의 소치라는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선진국에서는 야한 잠재의식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차츰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야한 잠재의식」을 「ESP(Extra-Sensory Perception:초감각적 지각)이라 고 부르는데 이는 「표면의식」에 대립되는 개념이다.표면의식은 언제나 도덕적 죄의식이나권력에 대한 공포,관습적 사고 따위에 얽매여 있다.그래서 표면의식에 의해 기도를 한다거나 자기최면을 건다고 하면 그런 소원은 도저히 성취되지 않는 다.ESP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토록많은 종교인들이 전쟁방지를 위해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지금껏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느냐고 묻는다.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신(神)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 기 때문이 아니라 ESP가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기때문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ESP는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심(心)」이라고 볼수 있다.인간의 잠재의식(ESP)은 야(野)하다.즉 어린애처럼 본능에 솔직하다.그 것은 어떠한 당위론적 도덕이나 종교적 공포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그래서 잠재의식은 이중적 위선을 싫어하고 동물적 육감의 세계에서만 활동하려 한다.그래서 표면의식이 계속 위선적으로 본능의 억압으로만 치달을 경우 무의식적 파괴욕구와 적 개심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명은 야(野)하다.잠재의식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본성에 솔직해질수 있을 때,우리는 아름다운 운명을 만들어낼수 있다.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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