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때는 실력 위주” … “MB는 인연 중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와 강도다.”

1998년 3월 김대중(DJ) 대통령이 첫 청와대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고강도 개혁을 요구받고 있었다. 그래선지 “개혁을 강요당하는 게 아니라 자유로써 받아들여 경제개혁을 해야 전화위복이 된다”며 “우리는 앞으로 1년간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 자리엔 그와 함께 ‘죽을 고생’을 한 1기 경제팀이 있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그리고 김태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봉균 정책기획수석 등이 주요 인사였다.


시장은 이들을 관료와 전문가, DJ자문그룹이 어우러진 일종의 ‘혼성군’으로 평가했다. 각 분야에서 누구나 수긍할 만한 실력자이기도 했다.

특히 이 장관과 이 위원장은 DJ와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이헌재 위원장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야인생활을 오래한 이 위원장이 시장에 신뢰와 두려움을 함께 줄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판단에 따라 전격 발탁했고 일년반 뒤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DJ와 공동 정부를 꾸렸던 자민련의 김용환 수석부총재가 건의해 기용됐다. DJ가 이규성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며 “일면식도 없지만 일 잘한다고 해서 뽑았소”라고 한 일도 있다.

DJ의 측근은 김태동 수석뿐이었다. 같은 해 5월 김 수석이 다른 경제팀과 손발이 잘 안 맞는다는 세평이 나오자 DJ는 강봉균 수석과 김 수석의 보직을 맞바꿨다. 시장에선 코드보다 실력을 중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명박(MB) 정부에도 유사한 경제 논의 기구들이 있다. 서별관회의로 불리는 거시경제정책협의회가 대표적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전광우 금융위원장, 박병원 경제수석 등이 고정 참석자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DJ 때와 전혀 다르다. “시장보다는 인연을 중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시장의 냉혹한 판단에도 강 장관의 독주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강 장관의 유임이 그가 이 대통령의 20여 년 이상 된 지기이고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함께 MB노믹스(이명박의 경제정책)를 설계한 사람이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이성태 총재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사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강 장관이 독주했던 건 아니다. 쇠고기 파문 이후 당·정·청이 정비되면서 청와대에 박병원 경제수석(행시 17회, 재경부 차관), 당에 임태희 정책위의장(행시 24회, 재경부 산업경제과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강 장관을 사실상 견제할 사람이 사라진 탓이 크다. 강 장관은 고시 8회로 이들의 한참 선배다. 여권 관계자는 “강 장관은 누군가 옆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주지 않으면 믿는 걸 그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라며 “문제는 그를 시장에선 ‘올드보이’(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의미)로 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오히려 제 목소리를 못 내서 비판받고 있다. 전 위원장도 이 대통령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 대통령이 90년대 말 미국 워싱턴에 체류할 때 교류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한 경제계 인사는 “지금이라도 경제 라인을 바꾸는 게 시장의 신뢰를 얻는 첫걸음”이라며 “대신할 만한 또는 믿고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청와대는 느끼는 듯 하지만 찾아보면 숨은 실력자들이 많다. 인연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J-HOT]

▶ 금리 대폭인하 했는데 환율 급등, 왜?

▶ 朴 "경제 살릴 묘약 있다, 이거 한방이면…"

▶ '미래에셋' 박현주 "지금 100년에 한번 있을 투자기회"

▶ 잠실 주공5단지 일주일새 1억↓ 2005년 가격 나와

▶ 신격호 회장 셋째 부인, 롯데쇼핑 주주에

▶ 삼성 럭비폰, 美서 '흙탕물 넣고 발로 차기' 유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