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바람 탄 민주당 의회선거도 압승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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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돌(72)은 1996년 당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가 실패한 밥 돌의 부인이다. 다음달 4일(현지시간) 대선과 동시에 자신의 선거를 치르는 그는 지역구인 노스캐롤라이나를 돌면서 “민주당에 모든 권력을 줘서는 안 된다. 민주당을 (의회에서) 견제할 힘을 달라”고 외친다.

대선 분위기가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기우는 듯하자 상·하원 선거에 나선 공화당 후보들이 들고 나온 건 ‘민주당 견제론’이다. 하지만 그런 호소는 통하지 않고 있다. 2006년 중간 선거에서 승리해 상·하원의 다수당이 된 민주당은 하원 전체(435석)와 상원의 3분의 1 의석(33석+특별선거 2석)이 걸려 있는 이번 선거에서도 압승해 의석을 더욱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하원 선거에선 공화당이 장악했던 지역 58곳이 위험한 상황이다. 이들 중 34곳은 민주당이 차지할 것이라는 게 공화당 내부자료의 분석이라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AP 통신은 “공화당 현역 의원이 은퇴 등을 이유로 불출마 선언한 29개 지역 중 6곳은 민주당에 넘어갈 것으로 보이며, 13곳도 위태위태하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하원의 민주당 의석이 3분 2(270석)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하원은 현재 민주당 235석, 공화당 199석, 공석 하나로 구성돼 있다. 특정 정당이 하원의 270석 이상을 획득하면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 민주당이 하원 의석을 현재보다 35석 늘리면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있으나마나 한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에 당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CNN 방송은 “상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며 “민주당이 꿈의 숫자(magic number)인 60석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49석인 민주당이 60석을 획득하면 공화당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막을 수 있게 된다. 전체 의원의 5분의 3인 60명이 ‘토론 종결’을 요구하면 필리버스터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은 언제든지 의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상원의 60석 이상을 차지하는 정당을 ‘수퍼 다수당(super majority)’라고 부르고 있다.

민주당이 의회 선거에서 약진하는 까닭은 대선에서 오바마가 매케인과 격차를 벌려 나가는 것과 같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끈 공화당 정권 8년을 비판하는 유권자가 많고, 경제위기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또 선거자금 경쟁에서 공화당을 압도하고 있다. AP 통신 등은 민주당이 후보들에게 지원하는 자금은 공화당이 쓰는 돈보다 세 배 정도 많다고 보도했다.

노동부·교통부 장관과 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엘리자베스조차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고전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의회 선거를 집중 보도하는 ‘로덴버그 폴리티컬 리포트’의 발행인 스튜어트 로덴버그는 “엘리자베스는 한때 무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이젠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여성 은행가 출신으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케이 해건(55)은 당에서 내려온 대량의 선거자금을 마음껏 쓰고 있다. 그 덕분에 엘리자베스를 앞선다는 여론조사도 나온다.

하원 상황도 비슷하다. 코네티컷주에 지역구를 둔 공화당 크리스 셰이 의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민주당이 강세인 코네티컷에서 11선을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이번엔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이라크전을 비판하고, 부시 대통령과 거리를 둬왔지만 유권자 사이에서 ‘바꿔 바람’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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