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작기행>"신을 거역한 사람들" 피터 번스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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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리스크(위험)관리」는 증권투자가등 경제관계자들에게만 필요한개념은 아니다.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나 새로운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그리고 유권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정치인에게도 리스크관리가 요구된다.더 넓게 말하면 일상생활에서 끊 임없이 선택을강요받는 우리 모두가 리스크를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경제학자인 피터 번스타인이 쓴 『신을 거역한 사람들』(Against the Gods.Wiley刊)에는 인류초기에 신의 영역에 속하던 리스크관리를 과감하게 인간의 영역으로 빼앗아온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리스 크관리의 역사를 쉽게 풀어 쓴 대중서인 셈이다.자연히 수학과 통계에 얽힌이야기가 풍부하다.
리스크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인류의 발전사는 곧 리스크를 정복해 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리스크의 정복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의 적중률을 높이는 것이다.
확률계산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어느 통계학자의 이야기다.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이 한창이던 모스크바의 어느 겨울밤.명망높은 통계학자가 대피소에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전시인만큼 대피는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평소 그의 지론에 비춰보면 너무도 뜻밖이었다.그는 다가올 공습을 걱정하는 주민들에게 『모스크바 주민이 7백만명이나 되는데 설마 우리한테 폭탄이 떨어지겠어』라고 달랬던 것이다.그의 출현에 어리둥절해진 친구들이 마음을 바꾸게된 동기를 묻자 그의 대답이 걸작이 었다.『모스크바에는 시민이7백만명이나 되는데 하필 어젯밤에 코끼리가 공습을 받았잖아』라는 것이었다.이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통계에 밝은 전문가라는 점에서도 곰곰 새겨볼 만하다.명백한 통계자료가 있어도 그 위험이자기 눈앞으로 닥치면 인간의 행동이 달라지게 마련이다.확률이론에서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확률이라고 하면 언뜻 주사위 던지기가 떠 오른다.고대 그리스인들도 숫자에 밝았고 양과 사슴의 발가락마디 뼈를 이용해 주사위놀이를 즐겼지만 확률이라는 아이디어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이에 대해 저자는 아라비아 숫자와는 달리 계산하기가 복잡한 그들의 숫자체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주사위 놀이의 확률을 계산해보겠다고 나선 최초의 인물은 150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지롤라모 카르다노였다.의사이자 도박꾼이었던 카르다노 덕분에 이탈리아는 확률이론의 발상지로기록되는 영광을 안게 된 셈이다.
그후 영국의 소매상인 존 그론트가 리스크에 대한 이해를 한단계 높였다.1604~1661년 런던의 출생기록과 사망기록을 분석해 당시의 평균기대수명이 16년이라고 계산해냈다.곧이어 영국의 천문학자인 에드먼드 핼리는 그론트의 연구를 바 탕으로 최초의 사망률통계표를 작성했다.이것이 현재 생명보험회사들이 보험료를 산정하는 기초가 됐다.
젊은 시절 수학자로도 활약했던 파스칼도 피에르 드 페르마와 함께 채 끝나지 않은 도박의 판돈을 분배하는 방법을 풀어냈다.
이것이 보험등 리스크관리 분야의 초석이 됐다.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나폴레옹이 1807년 독일을 침공할 때 그가 거주하는 괴팅겐을 우회하도록 명령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유명한 수학자다.그 자신은 리스크관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의 발 견은 리스크관리에 크게 기여했다.지구가 둥근데다 표면의 굴곡이 심하기 때문에 예컨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실제거리와 새가 날아갈 때의 거리가 다르다는 주장이었다.그의 이론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릴경우 코스에 따라 교통사고 발생확률이 다르게 계산되는 등의 분야에 응용된다.
그러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확률에 대한 신뢰도가 다소 떨어졌다.장기에 걸친 평균통계는 인간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였다.존 메이나드 케인스같은 학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죽게 돼 있지 않는가』라고 말하기 도 했다.
확률 다음에 이어진 것이 게임이론.20세기 중엽 헝가리 출신의 미국수학자로 컴퓨터와 폭탄제조기술에 뛰어났던 요한 폰 루트비히 노이만이 주창한 이론이다.그는 인간의 삶을 「보상은 극대화하고 위험은 극소화하려는 인간들의 경연장」으로 파악했다.게임이론가들의 통찰력이 그뒤 포트폴리오 이론으로 이어졌다.투자 분야를 다양화할 경우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확률학자들은 어떻게 보면 신한테서 「리스크에 대한 이해」를 뺏어낸 인물들이다.그러나 아무리 확률을 높인다고 해도 인간이 닿지 못할 부분은 남게 마련이다.바로 그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도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한 아이디 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자연은 되풀이하면서 일정한 패턴을 드러낸다.그러나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정명진 기자〉 □저자 피터 번스타인: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자랑하는 경제학자로 지금도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월 스트리트에서 투자기관과 기업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이 책은 여섯번째 저서.대표작 『훌륭한 아이디어』(Capital Idea)는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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