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열린 아버지.남편'이 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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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김정현의 『아버지』란 소설이 화제다.많은 남성들이 이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한다.독자층도 주인공과 비슷한 40~50대에서 20대 젊은 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췌장암선고를 받은 중년가장의 이야기다.서기관직급의 공무원인 주인공이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겪는외로운 방황과 죽은 뒤 가족의 장래를 일일이 챙기는 세심한 배려를 그린다.그러나 그런 사실을 모르는 가족은 매일 술에 절어들어오는 그에게 냉랭하고 딸아이는 매몰찬 원망의 편지를 건넨다. 소설은 말없이 깊은 사랑을 실천하는 아버지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가족이 왜 몰라주는가 하는 점을 강조한다.하지만 왜 아버지가 그런 대접을 받게됐는가에 대해서는깊게 짚어보지 않는 것같다.주인공의 외로움은 바로 거기,가족과의 소통단절에서 초래된 것인데도 말이다.결국 소설은 아버지의 상황을 알게된 가족들이 울며불며 잘못했다고 빌고,아버지의 깊은사랑앞에 자신들의 모자람을 깨닫는다는 다소 신파적인 결말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TV드라마에서도 최근 부쩍 아버지를 소재로 작품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이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되찾자」「가장의 권위를 되살리자」는 주장을 내세우기 일쑤다.하지만 그구체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참신한 방법을 제시하지 는 못하는 듯하다.아마도 이것은 사회의 변화속도에 비해 전통적인 가부장제속의 「가장」에 대한 관념과 기대치가 너무 강해 서로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같다.
새로운 아버지상은 과거의 모습를 되찾는데서 구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가장은 집에서 바깥일을 시시콜콜 얘기해선 안된다는 관념을 심어왔다.그리고 집안일은 아내에게맡기면 그만이었다.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바깥 에서 술로 푼다.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생활과 집을 분리하다보니 아내와공유할 이야기가 점점 없어진다.거꾸로 아내입장에서 보면 남편은사회활동만 하므로 기대할 것은 사회적인 출세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주인공은 암이라는 사실조차 가족에게 말하지않았다.가족의 고통을 가능한 한 줄여보겠다는 「깊은 배려」에서다.그대신 매일 술로 외로움을 달래고 다른 여자에게서 위안을 얻었다.하지만 그게 진정 가족을 생각하는 것일까.
아버지들에게 이제는 침묵이 주는 권위의 허상을 벗어버릴 때가됐다고 말하고 싶다.자기 목소리가 강해진 아내,자식과 더불어 자신의 고통을 나눌 수있는 열린 아버지가 되자.
이남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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