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포청천'은 무얼하고 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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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시 버스비리 사건을 지켜보면서 비난의 화살이 버스업체 대표들및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일부 공무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수사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느낀 바로는 이들 못지않게 서울시의 무책임과 무관심도 질타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조순(趙淳)서울시장이 『재발방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내용의 대시민 사과성명을 내는등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서울시의 태도는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검찰은 사건 초기 서울시측에 수차례 걸쳐 달아난 시청 공무원들이 소환에 응하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그러나 일부 간부들은 『겉으로는 협조하겠다』고 해놓고 뒤로는 업체대표의 소환마저 방해하고 나서는가 하면 출석하더라도 영수증등 증거가 나온 부분만 축소해 시인하라고 조언까지 했다고 한다.이 때문에 계속사업을 하려면 담당 공무원들과 등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버스회사 대표들로선 대부분 잠적하거나 부인 일변도로 버텨 수사에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또 어떤 간부 는 시장을 통해 검찰수뇌부에 『버스 노사 문제가 걱정』이라든가 『교통대란이 우려된다』며사건의 조기 마무리를 촉구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검찰이 대선을앞두고 조순시장을 겨냥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음해성 루머까지마구 퍼뜨리기도 했 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은 서울시 고급 공무원들이 사건수사의 본질을 시장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趙시장이 『검찰수사가 너무 길어져 교통관련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누구 누구는 서울시 교통정책에 꼭 필요한 인물인데 계속 일할수있게 해달라』는 식의 발언을 각계의 영향력있는 인사들에게 전달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같은 상황에서 혁신적 비리방지책이 나올 수 있겠으며,또 나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교통관리실은 민원이 끊이지 않는 부서인데도 서울시청청사와 떨어진 무교동의 구대한체육회 건물에 「딴집 살림」을 차리고 있다.사무실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었는지 그곳에는 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같은 사 실은 시장을 빼놓고는 서울시 간부들 거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 교통관련 부서는 건설등 다른 민원분야에 비해선 뇌물단가가 「피라미」라는 자조섞인 말마저 나돈다.
그렇다면 해답은 자명하다.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좀더 눈을 크게 뜨고 사람과 자리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시민을 분노와 허탈에 빠지게 하는 일은 이번 한번으로 족하다.
신동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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