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핵심 놓친 사법개혁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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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로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개혁 대상의 도마에 오른 것이 사법이다. 현재도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사법개혁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백화점식으로 판을 벌여놓고는 원론적 논의를 반복하는 수준이고, 개혁의 핵심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거나 무엇을 개혁안으로 채택하는 경우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구상을 잡지 못하고 있다.

개혁이란 무엇이 근본 문제고 핵심 모순이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정확히 잡아내야 그 목표가 올바로 설정되며,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현실성 있게 수립돼 실천으로 옮겨 갈 수 있다. 그동안 사법을 둘러싸고 발생한 많은 문제는 핵심적인 '사법 모순'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사법 모순'은 '법률가 양성.충원 실패'와 '사법부의 구조적 실패'를 말한다. 이 둘이 사법개혁의 양대 타깃이고, 이를 해결해야 '성공하는 사법'이 된다.

시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고 각 전문화된 영역마다 철저한 프로로서의 법률가를 요구하는데, 여전히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법률가가 되는 게 과거(科擧)에 합격하고 일거에 출세하는 것으로 돼 있는 봉건적 모순구조를 그대로 안고 있는 한 아무리 땜질을 해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사법부의 강고한 중앙집중식 관료주의와 폐쇄주의를 유지한 채 호봉 단일화, 법정 개선, 재판 진행과 소송절차 개선, 경향교류제, 근무여건 개선 등 아무리 머리를 짜내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모순의 해결 방향은 분명하다. 법률가 양성.충원에서는 사법시험이라는 일회적인 '순간 승부'에 의한 선발에서 '법학 교육-법률가 자격시험-직역 연수-부적격자 퇴출-계속교육'이라는 법률가 양성.충원의 유기적 연계를 가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그 방향이다. 법률가 자격시험엔 정규 법학교육을 이수한 사람만 응시할 수 있다. 사법부의 구조적 모순 해결은 사법독립의 원리와 사법책임의 원리라는 사법의 양대 원리를 굳게 붙잡고, 이 원리에 합당하도록 사법부 구조를 개혁해 사법의 진정한 기능을 살려내는 것이다. 이는 사법부 구조를 각 심급, 즉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단위로 인적 면과 재정적 면에서 완전 분리해 독립시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각 법원의 구성방법과 판사의 충원방법, 법원 운영시스템을 짜면 된다. 이렇게 하면 재판의 독립, 판사의 충원과 인사, 판사 신분의 보장, 판사의 권위와 자부심 등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나머지 필요한 것은 새 구조에 맞게 정비하면 된다.

새로운 법률가 양성.충원 시스템으로 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논의된다. 기본적으로 미국 로스쿨(law school)의 도입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법학전문대학원제도 채택보다 이를 성공시키는 구체적인 준비와 실행이다. 이에는 로스쿨 운영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연구가 뒤따라야 할 뿐 아니라 새 법학 교육에 요구되는 물적 설비, 교수 충원방법, 교육방법, 교육자료 개발, 새 학사관리 시스템 구축 등 획기적인 시스템 전환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 과연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계획을 세우면서 로스쿨로의 전환을 운운하는지 걱정이 된다. 구체적 실천계획 없이 4년제 법과대학을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는 것만으로 로스쿨이 됐다고 하면 '무늬만 로스쿨'로 돼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개혁이 개악이 되는 것이다.

배심제는 문제점 또한 심각하고 폐지론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위헌문제까지 걸려 있는 주변적인 문제이므로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뤄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판사의 종신제는 사법책임원리를 무시하는 반개혁이므로 개혁 주제가 될 수 없고, 오히려 판사감독제도와 부적격자 퇴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부디 개혁의 본(本)과 말(末)을 정확히 분간하고 '제대로 알고 하는 개혁'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