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에세이>전화소재 코미디에 가려진 사이버세계의 삭막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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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데니스는 통화중』은 현대 도시인들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와 전화라는 미디어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다.
19세기 후반 전화가 맨 처음 개발됐을 때 개인미디어로서의 전화가 목표가 아니었다.초기의 전화는 오히려 오늘날의 라디오에가까운,뉴스나 음악을 전달하는 매스미디어였다.오늘날 우리가 전화 본래의 사용법이라 믿고 있는,전달을 위한 도 구적 가치 역시 기술사(技術史)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였던 것이다.
얼마전 일본의 NTT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등여학생의 평균통화시간은 11분인데 여대생은 36분,초등남학생은 2분인 반면 남자대학생은 35분에 달했다.이런 현상은 성장해 갈수록 전화가 주는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자기충족적 쾌락의 노예가 돼가는과정의 단적인 예다.
나 자신도 한때 전화를 길게 하는 습관이 있었다.2~3시간씩장시간 전화를 하고 있으면 자신의 소재를 알수없게 되는 기이한착각에 빠진 경험이 있다.이같은 현상은 컴퓨터통신에서도 마찬가지다.익명성이 보장된 가공의 전자공간 안에서 또 하나의 나를 연출해 인격의 단편만을 접속시킴으로써 친밀한 관계를 한때나마 영위해 보지만 현실로 돌아올 때 자신의 소재에 대해 느끼는 위화감은 전화와 마찬가지다.전화가 통화자를 전자적으로 음성화시켰다면 컴퓨터통신은 통신자를 전자적 으로 문자화시킨다.그럼으로써각자의 신체가 상대의 시선에 파악되는 것을 막고 가공의 이미지로 자기연출을 계속해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고 있는 뚜렷한 현상은 바로 이것.우리 신체의 일부가 전자음성과 문자로 복제되고 이것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네트워크 속으로 확산돼가는 사태다.그나마 과도기적 위치에 존재하는 우리는 취사선택이 가능하겠지만 유치원 때부터 전자미디어 속에서 살고 있는 다음 세대를 생각해보라.『데니스는 통화중』이란 영화가 단지 미디어를 소재로 한 코미디영화에 불과한지를.그 삭막한 세계는 그들에게 에누리없는 현실 그 자체일 것이다.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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