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 차이나]올림픽 이후의 중국號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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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의 변화는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단지 가속페달을 세게 밟은 격입니다. 올림픽이 끝났다고 해서 자동차의 방향을 바꾸지도 자동차의 크기나 모양이 변하지도 않습니다”

지난 14일부터 한국 언론재단과 중국 신화사와 양국 언론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1999년부터 9년째 진행되고 있는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이다. 한국 언론인과 중국 언론인이 동시에 상대국을 방문해 몸소 상대국을 체험한 후 한데 모여 느낌을 공유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올림픽 전후의 중국은 과연 같은 나라일까’라는 문제의식을 같고 중국을 살펴봤다.

16일 베이징에서 만난 왕이저우(王逸舟)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ㆍ정치연구소 부소장은 중국의 굴기를 우려하는 서방의 목소리를 인식한 듯 자동차의 가속 페달로 올림픽 전후의 변화를 설명했다.
왕 부소장은 개혁개방 30년과 발맞춰 열린 중국의 올림픽을 성인식에 비유했다. 성인이 됐다는 것은 더욱 크고 복잡한 문제가 기다리는 사회로 뛰어들었다는 말이라며 올림픽의 성과와 함께 과제가 더욱 많음을 토로했다. 올림픽이 급속히 성장한 새로운 중국을 전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키는 성과도 얻었지만 동시에 중국의 굴기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반대급부도 생겨났다며 올림픽의 득실을 설명했다.

“서른살 먹은 처녀가 처음으로 치장을 하고 선을 보러 나가는 격이예요.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주스스(인민대 경제학부 3년)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외국 언론의 중국에 대한 기사에 특히 관심을 같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올림픽을 치른 중국 청년들의 심정도 왕 부소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시에 왕 부소장은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를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패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중국 모델 즉 베이징 컨센서스로의 대체를 꿈꾸는 것인가 물었다. 그는 현재 중국 정부는 미국을 대체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고 답했다. 얼마전 원자바오 총리의 워싱턴 방문에서의 발언과 후진타오 주석이 부시 대통령에게 슬기로운 위기 극복을 기원한 전화통화를 예로 들었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질서에 변화가 생길 것임은 강하게 시사했다.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한중 관계의 결산과 전망을 묻는 질문에 왕 부소장은 흥미로운 답변을 했다. “지난 16년 간의 한중 관계는 중국에게 서로 다른 국가 체제, 서로 다른 사회 체제를 갖는 국가와도 외교관계를 급속히 발전 시킬 수 있다는 아주 좋은 선례가 됐다”고 답한 왕 부소장은 “어떤 양국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의 갈등과 마찰은 피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문제를 통제 가능한 수위로 조정해 쌍방 공통의 이익을 늘려가는 자세”라고 한중 관계가 긍정적으로 성숙해 갈 것으로 전망했다.

사회과학원 방문을 마치고 베이징 시단(西單)의 도서 빌딩을 찾았다. 갓 출판된 개혁개방 30년을 결산하는 여러 책들이 정문 앞 특별 코너에 수없이 쌓여있었다. 그 중 한 권인 ‘왜 중국은 이렇게 성공했는가’라는 책에는 78년 3중 전회 이후 굵직굵직한 정책 변화들과 구체적인 성과들을 자신감 있게 열거하고 있었다.

올림픽 이후 중국 라오바이싱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지식계층은 조심조심할 필요성을 갖게 된 듯하다. 자신감과 함께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두려움이 교차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이에 더불어 중국에는 찬란했던 과거를 새롭게 되돌아보는 복고풍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베이징 첸먼 앞을 비롯해 곳곳에 옛 상점 거리를 조성하고 서점에는 역사와 전통에 대한 책을 쏟아 내는 등 강력하고 화려했던 왕조시절을 새롭게 조명하며 중국을 한당(漢唐)시절과 같이 부흥시키겠다는 의식이 위아래를 막론하고 공감을 이루고 있다.

2008년 10월 자금성의 중심 태화전에서는 반바지라 불리는 중국 중앙방송(CC-TV) 신사옥과 하늘을 찌를 듯이 오르는 74층 궈마오(國貿) 빌딩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베이징의 하늘은 중국의 자신감 마냥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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