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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과 정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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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진실이 떠난 지 18일이 됐다. 사별(死別) 후에 배달되는 편지처럼 그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7일 저녁 ‘mbc스페셜’에선 작품을 같이 하거나 친분을 나누었던 이들이 최진실을 증언했다. 누구는 연방 눈물을 닦았고 누구는 허탈하게 웃었으며, 누구는 “아직도 최진실이 나를 부르는 환청이 있다”고 했다.

이태곤은 최진실의 마지막 작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약칭 내마스)’을 연출했다. “최진실씨는 촬영할 때 항상 먼저 와 있었어요. 그리고 구석에서 누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가보면 최진실이었죠. 그녀는 손에서 대본을 놓은 적이 없어요.” 김종창은 최진실의 재기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연출한 사람이다. “많은 연기자가 연기를 연기로 합니다. 그런데 최진실은 마치 자기 삶인 것처럼 온몸으로 연기했어요. 카메라맨이 울다가 포커스를 맞추지 못한 적도 있지요.” 정준호는 ‘내마스’에서 최진실의 연인 역을 맡았다. “우리는 촬영에 쫓겨 잠을 1~2시간밖에 자지 못하곤 했어요. 그런데도 최진실씨는 인터넷에서 시청자 의견 수백 개를 다 읽고는 내게 얘기해 주었어요.” 정웅인은 ‘내마스’에 같이 출연했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곳저곳에서) 막 먹어요. 여배우에 대해 내가 상상하고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것과는 달랐죠. 그녀는 그렇게 진실된 모습을 숨기지 않았어요.”

많은 이들은 그녀가 CF 한 편 찍으면 수억원을 버는 것만 부러워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수억원 속에는 한 여배우의 처절한 노력 인생이 숨어 있다. 미모야 하늘에서 떨어지지만 연기는 그렇지 않다. ‘mbc스페셜’에서 최진실은 이런 얘기를 남겼다. “탤런트가 되기 전에 엄마랑 남동생이랑 단칸방에서 살았어요. 밤늦게 큰 거울을 세워놓고 연기 연습을 했는데 거울이 쓰러져 가족들의 코가 깨진 적도 있어요.” 첫 광고로 돈을 벌어 가족은 방 2개짜리로 옮겼다. “화장실이 있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데 가족 모두 너무 좋아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최진실의 죽음은 21세기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mbc스페셜’에서 어떤 중년 남자는 “내가 완전 공황(恐慌)”이라 했고, 어떤 여인은 “내 딸을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최진실의 죽음 이후 지금까지 내 마음엔 의문 하나가 있다. 국민의 안방에서 살았던 최고 배우가 죽었는데, 그래서 많은 이가 슬퍼했는데 왜 정치 지도자들은 아무런 감정의 공유가 없는가. 상가에도, 영결식장에도, 무덤에도, 인터넷에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보낸 슬픔의 표시는 없다.

정치 지도자들은 평상시에는 대중스타를 곧잘 활용한다. 선거 때는 유명 연예인을 동원해 득표 작전을 벌인다. 정치인은 대중의 감정 속으로 파고드는 일에도 익숙하다. 아이들이 유괴 살해되면 얼른 상가에 달려가 부모를 껴안는다. 생전 얼굴을 모르는 소방관이 죽어도 영정 앞에 절을 한다. 그런데 왜 최진실의 영정 옆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을까. 병사(病死)나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어서,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당시엔 사채 루머가 있어서, 사생활에 요란한 파열음이 있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국민 마음속에 있는 최진실을 덮을 수 있을까. 자살만 해도 그렇다. 잘못된 인터넷 문화가 그녀를 파괴했다면 정치권의 책임도 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자살 부분이 걸린다면 조문은 조문대로 하고 최불암처럼 “그렇다고 자살한 진실이도 잘못했어”라고 하면 되지 않았을까. 사생활의 파열음도 그렇다. 사생활의 비밀이 있든 없든 대(大)기업인이 죽으면 정치 지도자들은 엄숙하게 조문한다. 최진실과 그들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국민에게 준 것으로 보면 최진실이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상가에 가지 않더라도 말이나 글로 국민과 아픔을 같이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항상 국민과 아픔을 나누겠다고 한다. 정작 많은 이가 아파할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