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에 승부 결판, 참기 힘든'올인의 유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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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20면

지난 9월 말 1000억원대의 순수익을 올린 인터넷 ‘바카라’ 사이트가 검찰에 적발돼 사이트 운영자 등 관련자 4명이 구속됐다. 수사 결과 사이트를 개설한 지 1년7개월 만에 이 사이트에서 오간 판돈이 5000억원에 달하고 접속 네티즌은 1만여 명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2~3년 전부터 외국에 서버를 둔 바카라 사이트가 불법 도박의 주요 창구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인이 바카라를 즐긴다는 점을 이용해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바카라 사이트까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추세다. 한국인들은 왜 유독 바카라에 빠져드는 걸까.

인터넷 도박의 주 종목 '바카라'

바카라는 카드를 나눠 주는 역할을 하는 뱅커(banker)와 플레이어 중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를 선택한 뒤 베팅을 하도록 한다. 양쪽 중 하나에 돈을 건다는 점에서 ‘갑오잡기’나 ‘홀짝 놀이’와 비슷하다. 뱅커와 플레이어는 각각 두 장씩의 카드를 받아 카드의 숫자를 합한 수의 끝자리가 9에 가까운 쪽이 이기게 된다. 만약 ‘타이(tie·동점)’가 될 경우 타이에 베팅을 했다면 건 돈의 8배에 달하는 배당을 받게 된다.

15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 널리 유행하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현재의 룰로 정착됐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정작 외국 유명 카지노에서 바카라를 즐기는 주 고객은 한국인과 중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인들이 카지노에서 블랙잭을 가장 많이 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국내에서 내국인이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카지노인 강원랜드만 해도 132개의 테이블 중 블랙잭 테이블이 49개인데 비해 바카라 테이블은 61개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다. 사업차 필리핀에 들를 때마다 현지 도박장을 이용한다는 이모(48)씨는 “외국 카지노에 가보면 바카라 게임 테이블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대다수이고 서양인들은 소수만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씨는 “다른 어떤 도박보다 게임 규칙이 간단해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베팅을 해서 승부가 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아 지루하지 않다”며 “10만원을 걸면 10만원을, 1억원을 걸면 1억원을 바로 따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거액을 만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빨리 돈을 잃을 위험성이 큰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바카라 사이트들은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라이브(생중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뮬레이션이나 조작이 아니라 도박장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내세우는 것이다.

게임이 진행되는 시간대에 도박장 내에 설치된 TV에서 방송되는 CNN 뉴스를 게임화면에 띄우는 방식을 쓴다. 판돈 5000억원대 바카라 사이트도 필리핀에 바카라 도박장을 열고 이를 현지에서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바카라 사이트가 수십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한 숫자나 실태를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박 중독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찬식 박사는 “다른 카드 게임은 자신과 무관하게 주위의 다른 플레이어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데 반해 바카라는 승패가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에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올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승부 근성과 잘 맞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바카라가 인터넷 공간으로까지 번지면서 중독자가 크게 늘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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