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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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03면

“이상도 해라. 왜 나는 정체 모를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글들을 남기는 걸까?” 희곡 작가 윤영선(1954~2007)은 만날 자신에게 물었다. 1990년대 중반, 연극 ‘사팔뜨기 선문답’ ‘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를 한국 무대에 던져 놓고 그는 산과 바다를 떠돌았다. 연극을 “자기 정화와 반성을 위한 공간”으로 여겼던 그에게 오염된 언어가 난무하는 이 땅은 “난 문 밖으로 나가지 않을래. 문을 열고 나가면 정글이야”(‘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에서)라고 읊조리게 했다.

울림과 떨림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말

극작가로서 윤영선은 자신의 희곡으로 간절히 타인과 소통하기를 기도했던 구도자였다. “텍스트는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자기 몸을 열고 자기 몸의 속삭임과 외침을 들려주기를 열망한 채(…) 텍스트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거기 잠들어 있다. 모든 것이 깨어났을 때, 공간이 시간성을 획득했을 때에야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1997년 발표한 뒤 여러 차례 재공연된 ‘키스’는 이런 그의 바람이 육화된 대표작이다. 언어와 달리 두 몸 사이의 거리를 없애는 키스를 윤영선은 “존재의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불렀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라고 연거푸 묻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한다. “마”라는 외마디 끝에 그들은 서로 바라보고, 입술이 점점 가까이 간다. 스산한 키스다.

지난해 늦여름, 그가 영원히 눈을 감았을 때 많은 이가 고인의 2005년 작 ‘여행’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견디기 위해서 나무나 풀처럼 술에 취해 몽롱한 눈으로 비스듬하게 이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희망한다. 눈을 부릅뜨고 주장하지 않기를. 넌지시 말을 하기를.” 나무가 되고 싶었던 극작가를 그리워하는 벗과 후배들이 꾸린 ‘윤영선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인 ‘임차인’이 11월 9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02-744-7304)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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