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조선시대 생활사""...어떻게 살았을까"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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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선시대 신문고는 상민들에겐 「그림에 떡」이었다.억울한 일이있어도 고을수령과 관찰사,그리고 사헌부등 단계별로 확인서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재산관련 송사를 풀려는 관리들만 신문고를 즐겨 두드렸다.
드문 경우지만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노비와 상전이 함께 계를 만들기도 했다.이른바 노주계(奴主契).
노비와 주인이 공동출자,흉년등 역경에 대처했다.특히 18세기의 영세해진 양반들에게 노비들의 협조는 절실했었다.
조선시대 5백년의 일상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낸 두종류의 책이 동시에 출간됐다.한국고문서학회와 한국역사연구회가 각각 엮은 『조선시대 생활사』(역사비평사刊)와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청년사刊.전2권).앞책이 비교적 전문적 성격이 강하다면 뒤책은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접근한다.반면 왕조사.정치사에 치중됐던 기존의 서술방식을 지양하고 가정.신분.경제.사회.
문화등을 주제로 조선시대 생활상의 구석구석을 엄밀한 사료분석을통해 재구성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특히 불확실한 현대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혈연적으로 가까운 조선조에서 찾으려는 일반인들의 폭발적 관심을 타고 쏟아졌던『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조선 5백년역사 대탐험』등 올해의 출판경향을 이어받으며 이 야기 대상도 기존책보다 더욱 폭넓고 구체적으로 다뤄 흥미롭다.내용상 일부 중복된 부분도 있지만 그동안 숨겨졌던 조선의 진면목을 제시하는까닭에 비교해 읽으면 좋다.
예컨대 『…생활사』에 소개된 조선시대 관료들의 휴무일은 1년에 20일 정도.요즘 공무원의 법정 공휴일 69일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부모상이나 부모가 위독한 경우는 휴가를 얻어 1년에 60일 가량 일손을 놓을 수 있었다.
봄.여름엔 오전5~7시(卯時)에 출근하고 오후5~7시(酉時)퇴근했고 가을.겨울엔 출근은 두시간 늦게,퇴근은 두시간 빨리 했다.요즘 일부 기업체가 도입한 조기출퇴근제의「원조」격인 셈이다. 『…살았을까』는 사간원을 예로 들며 관료들의 하루를 상세하게 들여다본다.중.하급 관료들은 공좌부라는 출근부에 서명해야하는데 출근일수가 근무평가와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퇴근후에는 부서단위의 술자리도 많았다.특히 사간원은 왕에게 간언한다는 특별한 지위 때문에 별일이 없을 때에는 하루종일 술먹는 부서로 소문이 자자했다.주요 부서 중.하급 직원들에겐 숙직도 자주 돌아왔다.
조선조는 예치(禮治)를 표방했지만 도난.상해사건이 적지 않게일어났고 세종 재위기간엔 60여건의 간통사건이 발생,관련자들이극형을 받았다.
서민의 경우에는 양반보다 이혼이 쉬워 결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서로 말하고 이혼에 합의했다.칼로 웃옷의 자락을 베어 그조각을 상대방에게 주어 이혼의 표기로 삼기도 했다.
화장실이 별도로 없었던 프랑스궁전과는 달리 경복궁에는 28군데의 뒷간이 있었다.단지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고위직들은 뒷간에 가지 않고 이동식 변기를 사용했으며 양반주택에서는 남성과 여성전용의 화장실을 두었다.
의상에도 유행이 있어 남자들의 외투는 시기를 내려올수록 폭이넓어졌고 갓 또한 점점 커졌다.반면 여자들의 저고리는 후기로 갈수록 매우 짧아지는 경향을 보였는데 기생들이 입었던 짧은 저고리가 양반집 규수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이 책들은 언어.문자.인구변천.친족.재산상속.신앙.
촌락.교육.법률.족보.상업.농업.식생활.군역.판소리등 조선조의다양한 면모를 파노라마처럼 속속들이 짚어내고 있다.단지 풍부한내용을 빛낼 시각자료가 다소 부족한 느낌이라 아쉬움도 남는다.
또한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백과사전식 정보제공에는 성공했으나일정한 시각에 바탕을 둔 역사해석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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