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32.미원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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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원그룹에는 사훈(社訓)이나 사시(社是)가 없다.회장이 특별히 표방하는 경영이념도 없다.대신 3개항으로 구성된 「우리의 공유가치」가 있다.▶인간의 존엄과 자존을 중시하고▶고객의 만족과 가치를 창출하며▶가족의 행복과 사회에 공헌한다 는 내용이다. 94년초 임창욱(林昌郁.47)회장이 만든 「공유가치」는 매년초 발표되는 「회장 경영방침」과 나란히 그룹과 계열사의 주요사무실에 걸려 있다.
林회장은 87년9월 회장에 취임하며 부친인 임대홍(林大洪.76)명예회장이 창립이래 내걸었던 사훈(인화.근검.향상)을 없애고 경영이념(전원참여.미래지향.책임경영)을 만들었다가 이마저 없애버린 것이다.
『위로부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전 구성원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할때 보다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규칙과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林회장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월 열리던 사장단회의도 올들어 없애버렸다.분기별로 열리던계열사의 경영실적보고회도 이달부터 없앴다.계열사 경영실적 점검은 서류로도 충분하다는 이유였다.사장단 회의도 그때그때 필요에따라 개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이 회의에는 ㈜미 원과 유화.통상등 주력 3개사 대표는 꼭 참석하지만 나머지 계열사 대표는 사안에 따라 참석여부가 결정된다.
林회장은 재계 오너중 무척 소탈하고 검소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그의 이같은 성품은 부친인 명예회장으로부터 배운 것이다.그는 학창시절과 경영수업을 받을때 근검절약하는 생활자세에 대한 교육을 혹독할 정도로 받았다고 한다.
이런 때문인지 87년 회장 취임식때 그는 취임사 도중 『창업주의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룹 회장에 취임해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林회장은 요즘 임직원들에게 『창조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창업세대로 돌아가자』는 말도 강조한다.그룹에서는 이에대해 기업이나 구성원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창의력을갖춰야 하고,창업을 한다는 마음가짐과 열성도 필 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인간위주의 경영,인간과 일에 대한 사랑도 강조한다.임직원들에대해서도 『회장이 종업원으로 고용한게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도움을 받는 것일뿐』이라고 말한다.그룹의 구성원인 임직원과 가족이 행복해야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행복추구 경영」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林회장은 80년대말 「탈(脫)조미료」를 내걸고 건설과 음료.호텔.광고등의 사업에 잇따라 진출,사세를 크게 키웠다.외식과 편의점 사업도 새로 시작했다.
미원은 그러나 94년 재계 29위에서 올해는 36위로 내려앉았다.94년 동생 성욱(盛郁.29.세원 부사장)씨가 8개 계열사를 이끌고 세원그룹을 만들어 분리한데다 지난해에는 대한투자금융까지 매각한 때문이다.한때 최대 24개였던 계열 사 수도 12개로 줄었다.
그룹 규모 축소로 움츠러든 임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94년 대대적인 그룹 이미지통합(CI)작업을 했다.
지난해에는 연봉제를 도입하고 인사체계도 쇄신했다.
한편으로는 계열사 대표들의 세대교체도 활발하게 추진,창업세대출신중 상당수가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공계출신 사장많아 林회장의 경영방식은 자신의 계열사 경영 관여를 최소화한다는 것.계열사 임직원들과의 토론을 즐기지만 업무에 관해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대부분 계열사 대표의 자율에 맡긴다.
그러나 임원 인사와 신규투자.신제품 개발은 자신이 직접 챙긴다.특히 신제품 개발의 경우 개발팀 인선에서 일정관리까지 세세하게 관여한다.
미원그룹 사장단중에는 이공계 출신이 유난히 많다.林회장과 같은 한양대 출신도 6명이나 된다.그룹에서는 이에대해 『마케팅보다 기술을 중시하는 시대흐름을 반영한 것일뿐 특정대학 출신과 전공을 가려 인선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인도네시아에 머무르며 동남아사업을 총괄하는 고두모(高斗模.58)사장은 외환은행 출신으로 국제금융에도 밝다.그룹의 동남아 사업(중국 제외)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특히 인도네시아에는 제2의 미원그룹을 만든다는 장기포석에 따라 현지의 사업확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89~93년 현지법인 대표직을 맡다 국내의 통상 대표로 자리를 옮겼고,94년부터 두번째 현지근무중이다.
㈜미원의 이덕림(李德林.57)사장은 미원유화 출신.이공계 출신으로 경영마인드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유화 시절 제품과 기술 수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주력사 대표로 발탁됐다.추진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두모씨 印尼사업 지휘 윤석용(尹錫容.55)사장은 통상과 베스트푸드 미원등 계열사 2개를 맡고 있다.80년대초 인도네시아에서 7년간 근무하며 현지법인의 활성화에도 기여했다.과묵한 성품이지만 아랫사람들과 격의없이 지낸다.판단력이 뛰어나다는평. 건설을 맡고있는 이기용(李岐鎔.57)사장은 건설분야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에 영입된 인물.경남기업과 한양개발등에서 쌓은현장 경험이 풍부하다.학구적인 성품으로 대학 출강도 하고 있다. 林회장의 부인이며 박성용(朴晟容)금호그룹 명예회장의 막내여동생인 박현주(朴賢珠.43)씨는 광고대행사인 상암기획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그룹 관계자들은그동안의 국내외 신규투자의 성과가 내년부터 가시화할 경우 그룹분위기가 지금보다 한결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또 5만5천평에 이르는 서울방학동의 조미료공장 부지 재활용 방안이 확정될 경우 그룹이 도약의 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한다.미원은 현재 이곳에 테마파크와 유통시설을 건설한다는 구상아래구체적인 방안을 마련중이다.

<다음은 삼양그룹편> 유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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