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에세이>日만화 보며 정체성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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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번주부터 영화배우 조용원과 소설가 이인화씨의 「시네에세이」를 연재합니다.두 필자가 1주일씩 번갈아가며 맡게될 「시네에세이」코너는 영화와 관련된 자유로운 형식의 에세이로 독자들에게 편안한 글을 읽는 즐거움을 줄 것입니다.
[편집자註 ] 90년 일본 유학당시 여러나라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 어렸을 때 본 만화영화 주제가인 『캔디캔디』를 한국어로불렀던 적이 있다.노래를 한참 부르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스페인 친구와 오스트리아 친구가 자기나라 말로 노래를 따라 불러 놀랐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캔디캔디』가 일본만화라는 사실을 몰랐다.대학에 다니면서야 어릴 때 보던 만화들이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의 통칭)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계각국에서 어린이들은 자국어로 더빙된 재패니메이션을 보면서성장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초.중학생의 90%이상이 자신이 보고 있는만화가 일본 것이라는 것을 알고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극중의 주인공 이름이나 지명이 한국식으로 번안돼 있어 혼돈을 준다.나 역시 『우주소년 아톰』『캔디캔디』『은하철도 999』등의 만화를 우리 것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보았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같다.지금도 10대들 대부분이 『슬램덩크』『드래건 볼』『아키라』등이 재패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이를 볼 것이다.
우리는 현재 무엇이 우리의 것이고,무엇이 남의 것인지를 모르는 문화혼돈 시대에 살고있다.우리 젊은이들이 제 아무리 한국어로 더빙되고 한국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활약하는 만화를 본다 할지라도 그 저변에 흐르고 있는 일본적 감성과 색채 는 살아있고,이는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만화를 통해 얻는 정서는 잠재의식 속에서 인간이 성장하는데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일본 만화를 통해 얻는 정신문화를 우리의 것이라 생각하며 성장한 세대는 당연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혼란을 겪을 것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처음으로 재패니메이션이 일본의이름을 달고 상영됐다.오토모 가쓰히로의 『기억』,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등 SF가 대부분이었지만 나름대로 현대 일본만화영화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관객들은 이 만화가 일본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관람했을 것이다.무엇이 우리 것이고 무엇이 남의 것인지 모르는 카피문화속에서 살아온 관객들에게 이 체험은 소중할듯 싶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일본 문화를 규제하고 있지만 일본 문화는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산재해 있다.타문화가 범람한다고 해 문화적 식민상태가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진짜 위험은 남의 것을 우리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상상해보라 .한국어로 번안된 세련된 일본만화를 우리 것으로 알고 자라난 아이들을.
이제 우리도 국제영화제를 열만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남의 문화를 공개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음성적으로 모방하는 것중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문화수용자의 알 권리를 찾을 때다.
▶프로필:영화배우.TV탤런트.67년 서울 출생.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일본 와세다대 영화학석사.도쿄대 영화학박사과정 졸업.영화 『땡볕』,TV드라마 『보통사람들』등 다수의 영화.드라마에 출연.현재 교육방송 영화프로 『시네마천국』진행 조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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