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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세상보기>'五敵' 작문연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김지하(金芝河)시인을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에서 『오적(五賊)』을 다시 쓸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나왔다.金추기경(樞機卿)은 오적을 「옛말」로 돌리자고 했으나 참석자들은 요즘 세태가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했다.결국 오적보다 오적 (五敵)을 선정하되 일단 후보를 추천받고 누가 시민의 공적(公敵)인가는 나중에 판단하기로 했다.
아울러 작문연습에 세가지 조건을 달았다.첫째, 원작과는 달리「님」자를 붙인다.둘째,의수화(擬獸化)는 안한다.셋째, 보도된행태만을 문제삼는다.드디어 첫 작품이 소개됐다.
국회의원 나오신다/국회의원님 재주봐라/루이 13세 만났다고 거들먹대며 나온다/루이 13세 어떻더뇨/혀끝에 짜르르 녹읍디다/(한국 국회의원이 대단하구나/태양왕(太陽王) 아버지도 녹이다니)/우리 재주 더보시오/비행기 띄워 혼례 축하/ 유리컵 던져유혈낭자/돈 많이 쓰고 고개젓기/땅 숨기고 축소신고/돈 숨기고과소신고 첫번째 주제는 그런대로 박수 갈채를 받았으나 좀더 짜릿한 맛을 내야 한다는 평을 받았다.두번째 시작(詩作)이 낭송됐다. 교육위원 나오신다/교육위원님 재주봐라/5천만원 쇼핑백에넣고/주는 마음 뽑히고 싶은 마음/즐거운 쇼핑 다녀오셔요/지도층의 부패지수/하늘같이 높아도/일단은 감(監)이 돼야겄소/(쯧쯧 감학(監學)은 감옥가고/사표(師表)는 사표 쓰는구 나) 두번째 발표는 분노의 공감을 일으켰다.스승중의 스승이라고 존경했더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아닌가.세번째 작품이 선보였다. 한총련 나오신다/한총련님 재주봐라/쇠파이프로 사람치고/화염병으로 불지른다/주체사상 학습하고/김정일에 충성의 편지쓴다/「글과 모습으로 당신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해방된 남조선에서 만나요」/(호의호식 시켜줬더니 애비 애미 가슴에 못박는구나) 세번째 작품에 대해서는 왜 우리 아이들이 이 지경이 됐는지어른부터 반성해야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그러나 소수 좌경학생은시대착오적 망동으로 인해 시민의 공적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의견도 많았다.네번째 후보가 등장했다.
폭력배 나오신다/폭력배님 재주봐라/회칼로 전신 칼침/닛폰도로육신난자/협박 공갈 금품갈취 조폭배(組暴輩)/아녀자 겁탈전문 포주 폭력배/마피아 야쿠자 삼합회(三合會)/국제 깡패 끌어들이기/회개했다 영화찍고/여전히 암흑가의 보스(번롱 당한 매스컴,어유 헛똑똑이들) 폭력배를 주제로 한 시는 만장의 혀를 차게 했으나 그들의 발호를 막지못한 무능한 행정력을 개탄하는 소리도높았다.자연히 다섯번째 후보는 무능 공무원이 뽑히게 됐다.
무능 공무원 나오신다/무능 공무원님 재주봐라/권총 빼앗기기 권총 오발하기/시끄럽다 경보장치 꺼라/졸립다 정족수 미달 법안통과/인가(認可)에는 뇌물,허가에는 급행료/(뭣 감사반이 떴다고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로구나) 이렇게 해서 오적 후보를 노래한 시작 연습은 끝났다.金시인은 『오적(五賊)이 있기 때문에오적을 썼다』고 담담히 말한바 있다.마찬가지로 오적(五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족되지 못하면 조만간 그 누군가가 연습에만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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