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체, 환율 급등에 곡물 수입 중단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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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환율로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거릴 조짐이다. 밀가루·설탕·전분 등을 만드는 식품소재 업체들이 환율 급등을 견디지 못해 원료 곡물의 수입을 잠정 중단하거나 줄이기 때문이다. 수입 물량을 줄이지 않는 대신 제품 값을 올릴 생각을 하는 업체도 있다. 한국식품공업협회의 김일근 차장은 “국제 곡물가 하락으로 식품 값을 내릴 여력이 생겼는데 환율 상승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옥수수·대두 등을 연간 200만t 정도 수입하는 CJ제일제당은 이달 들어 대부분 곡물의 수입을 잠정 중단했다. 이열근 부장은 “지난해 경영 계획을 세울 때 올해 원-달러 환율을 950원으로 예측했다. 차질이 너무 크다. 재고 물량이 떨어질 때까지 곡물을 들여오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아공 등지에서 수입하는 원당은 한 달치, 미국에서 들여오는 원맥과 옥수수는 각각 석 달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환헤지를 했는데도 충분치 않다. 도입량을 지난해 수준으로 맞추려면 환율이 100원 오를 때마다 500억원이 더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는 “재고가 바닥나 곡물 수입을 재개하면 밀가루를 비롯해 값을 올려야 할 품목이 많다”고 덧붙였다.

밀가루를 만드는 한국동아제분은 밀 도입량을 줄였다. 미국·호주·캐나다 등지에서 연간 총 56억t의 밀을 들여오면서 100% 달러로 결제하는 회사다. 환율이 연평균 1400원일 경우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이 연간 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회사 측은 추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수입을 안 하거나 크게 줄이면 식량 파동이 올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시장원리에 따라 값을 올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설탕 원료인 과당을 과테말라·호주 등지에서 수입하는 삼양사도 수입을 줄이기로 했다.

대한제분은 밀 수입량을 줄이지 않는 대신 밀가루 값 인상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민감한 문제라 시기와 인상 규모를 정하지 못했다. 박양진 차장은 “식품은 휘발유처럼 국제시세에 연동해 題慕?가격을 바꾸기 힘든 품목이다.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밀가루 업체들은 국제 밀 가격이 내리자 7월 밀가루 값을 10∼20% 내렸다. 동아제분 관계자는 “당시 환율은 900원대였다. 이처럼 가파르게 뛸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밀 시세에 비춰 환율이 1000원은 돼야 손익을 맞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참치 통조림 원료인 참치를 국제 환율에 따라 결제하는 동원F&B도 곤혹스럽다. 이 회사는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해 6일 첫 모임을 열었다. 서정동 부장은 “불과 한 달 만에 참치 구입비가 20% 늘었다. 원가 절감·재고 감축을 의논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아 다음주에 2차 비상대책회의를 연다”고 했다.

수입 쇠고기 업체들도 막막하다. 김태열 한국수입육협회장은 “6월에 계약한 미국산 쇠고기가 이제 한국 시장에 상륙하고 있다. 그동안 환율이 오른 만큼 돈을 더 줘야 한다. 요즘 국내 시세로 미국산 쇠고기를 팔면 수입업자들이 손해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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