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촌이탈 다반사 한계점 드러난 국가관리 체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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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2개종목에 걸쳐 결승에 오른 K선수의 상태는 최악이었다.대회전부터 몸살을 앓은 탓에 주변에서는 『결승에 오른 것도 기적』이라며 금메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해당협회 관계자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이튿날 K는 예상을 뒤엎고 최상의 플레이를 펼치며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묘책은 바로 병역특례였다.협회관계자는 전날 『금하나면 병역특례 확정』이라고 귀띔해주었고 K는 사투를 펼친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협회관계자는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정반대의 경우를 당해야했다.여론에 밀려 92년 국가대표 선수들에대한 병역특례제도가 폐지된 이후 처음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Y선수는 결승에서 두차례나 이긴 적이 있던 선수에게 어이없이 패했던 것이다.
그의 결론은 『이제 더이상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는 자괴감이었다.엘리트체육 중심의 국가관리체육을 대표하는 병역특례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60년대 일본의 도쿄(東京)올림픽에 자극받아 엘리트체육을 정책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이른바 국가관리 체육정책이다.재계의 회장들이 각 종목단체장을 맡아 재정지원을 했고 병역특례.연금혜택.태릉선수촌육성.한국체육과학연구원등 엘 리트스포츠를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제도가 마련됐다.덕분에 한국은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스포츠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올해 애틀랜타올림픽은 한국의 국가관리 체육정책이 더이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88년 대회에서 4위를 기록한 종합성적은 92년 7위에서 이번에 10위로 하향추세를 보였고 특히 금메달은 7개이나 은메달이 15개로 훨씬 많은 「결승징크스」를 나타냈다.이 때문에 『한국스포츠를 대변하던 강인한 승부정신이 사라졌다■ 는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그러나 『한국스포츠도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는 증거』라는 여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더이상 각종 지원과 「태릉선수촌」으로 대표되는 국가관리 체육으로는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다는것이다.선수들은 더이상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면 절로 힘이 나고가난을 벗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를 택했던 과거의 선수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 전반의 생활향상과 프로스포츠의 활성화가 국제대회의 메달리스트에게 지급되는 「연금」의 약효마저 떨어뜨리고 있다.이 때문에 「태릉선수촌 이탈파동」은 더이상 「파동」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4~5개월씩 선 수촌에 묶여있어야 하는 대표선수생활을 과거처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것이다. 정부는 체육회 산하 단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재단법인화할 경우에만 5억원씩을 지원하고 있다.그러나 체육인들은 『근래 2~3년 사이에 국가의 지원이 크게 줄어 존폐위기에 놓여있다』고 아우성이다.94년 1백67억원에 달했던 태릉선수 촌예산도 매년 10%정도씩 줄고 있다.
국내 엘리트체육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다.선수는 선수대로 「당근」과 「채찍」의 통제아래서 훈련받기보다는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안될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애틀랜타올림픽때 국가대표팀 임원이었던 한 체육계 인사는 『각종 국제대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해 주기위해 「사육」당하는 것을 감수하려는 선수들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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