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일 亞太시대를 여는 신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분단(分斷) 반세기가 넘고 세계적으로는 냉전체제가 해소됐다고하지만 한반도에는 분단의 해소는 커녕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더구나 북한의 대규모 무장공작원 남파사태는 아직도 저들이 적화통일의 낡은 통일방식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남쪽 또한 흡수통일만이 유일한 통일의 길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 많다.이번 사태는 우리사회에서 이런 생각을 더욱 뿌리깊게 할 가능성이 크다.
자연히 당분간 남북간에는 대화와 협력같은 평화지향적 사고보다대결적인 분위기가 고조될 것이다.또 우리에게 지난날의 성취와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의 근거였던 우리경제가 지금은 심각한 하강국면을 맞고 있다.21세기 첨단정보화시대를 앞 두고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부문과 우리의 의식을 세계적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도록 개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변화와 개혁의 길목에서 오늘 중앙일보 창간 31주년을 맞는 우리의 감회와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우리 중앙일보는31년전 창간때도 그러했지만 제2창간 선언후 지난 2년반 동안도 과감한 개혁으로 한국 신문계의 변화를 이끌었 다.중앙일보가개혁과정에서 채택한 섹션체제및 가로짜기 편집은 한국 신문계에 보편화돼 있는 일본식 제작체제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의 성과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신문이사회와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것을 지난번 언론사태를 통해 우리 스스로 뼈저리게 인식했다.그런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던 근본원인은 신문들이 지면의 질과 성격으로 경쟁하려 하기보다 영역확보 경쟁에 더 열중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창간기념일을 맞아 정보의 질과 지면의 차별화를 더욱 뚜렷이 하기 위한 제2의 개혁에 나설 것을 다짐한다. 중앙일보가 그동안 단행해 왔던 개혁은 섹션화.조간전환.가로짜기 등 주로 체제적인 것,하드웨어적인 것이었다.따라서 이제부터의 제2의 개혁작업에서는 질적인 것,소프트웨어적인데 무게중심을 두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언론은 특권의식이나 오만을 버리고 기사의 책임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믿는다.우리는 언론사태를 통해일방적이고 부정확한 보도의 폐해를 스스로 체험했다.우리 스스로이런 폐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기사작성과정에서 부터 이해당사자의 의견과 반론을 함께 담도록 노력하고 사후에 이견이나 항의가있을 경우 성실히 지면에 반영할 작정이다.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미 「반론과 정정」란도 신설한 바 있지만 조만간 본격적인 옴부즈맨제도를 도입해 신문의 책임과 윤리의식을 강화해나갈 것이다. 또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지면의 질적 차별화를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통일문제를 우리의 현실적 과제로 풀어가는 일,아시아.태평양시대의 전개를 준비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아시아에 대한 재발견은 우선 아시아면의 신설로 나타날 것이다.우리 스스로가 아시아국가이고 아시아 각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아시아 뉴스를 소홀히 해왔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서구 언론의 눈을 통해 그것을 접해 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아시아 뉴스의 양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도시각도 아시아적인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중앙일보가 아시아 언론인 포럼 창설을 주도해 아시아 언론인간의 지혜및 정보의교환과 보도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뜻에서다.
남북통일문제는 이번 무장공작원사건에서 보듯 사방에 장애요소 투성이다.통일은 이런 숱한 장애를 극복하고 인내와 화해,그리고부단한 교류를 통해 남북이 함께 만들어 내야 할 민족의 창조물이다.그것을 위해 연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그래 서 통일을 준비하는 신문이 되도록 힘쓸 것이다.통일의 객관적 여건은 무르익고 있는데도 우리의 자세는 아직도 감정적이며 비현실적이다.중앙일보는 이성적이고 현실성 있는 대안제시를 통해 통일의 길을 여는 언론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중앙일보는 주1회 독립된 문화섹션을 만들어 독자들의 고급문화정보 수요에도 적극 부응해 나가고자 한다.
우리는 정상의 신문으로서의 긍지와 금도(襟度)를 갖고 경쟁에임할 것이며 오직 신문의 질로써 독자의 판단을 구할 것이다.독자 여러분의 격려와 성원을 바라마지 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