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유통업계 “빨리 버려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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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근 멜라민 파동을 계기로 식품·유통업계가 안전망을 재점검하고 나섰다. 이제는 2중·3중의 안전망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잉 대처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안전망을 마련해 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버려야 더 번다”=신세계 이마트의 서울 왕십리점 문홍석 PM(매장 관리자)은 매일 ‘버릴 물건 찾기’를 하고 있다. 그의 일 중 가장 중요한 임무가 냉장햄·냉장어묵·맛살 같은 신선식품의 유통기간을 점검해 진열대에서 치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치우는 물건은 놀랍게도 법적 유통기한이 절반 정도 남아 있는 것들이다.

이마트는 2006년 4월부터 신선제품의 유통기한을 절반으로 줄였다. 하광옥 상품본부장은 “단순히 진열된 시간뿐 아니라 소비자가 구매해 이동하고 먹는 시간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스템을 작동시킨 뒤 가장 애먹고 있는 품목은 냉장어묵. 법적 유통기한이 7∼9일인데 매장에 진열할 수 있는 시간은 4일이 마지노선이다. 이마트가 유통기간을 축소하고 나서 월평균 7000만원어치였던 어묵 폐기량은 한때 월 4억원어치까지 늘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노하우가 축적돼 월 5000만원 수준으로 줄였다.

농·축·수산물 유통기간도 법적 기준은 없지만 자체적으로 최소화했다. 사과의 경우 진열 때부터 나흘, 상추·닭은 이틀만 매장에 둘 수 있다. 양념을 하는 제품은 하루만 가능하다. 하 본부장은 “자체 유통기한을 정한 뒤 월 8억원 정도 비용이 더 든다”며 “그러나 이 시스템 도입 후 소비자의 신뢰가 높아져 야채 판매의 경우 약 10%가 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법률 규정보다 더 깐깐=GS리테일은 최근 식품의 신선도와 상한 음식의 판매를 없애기 위해 신선스티커를 도입했다. 조윤성 상무는 “배송이나 보관 중 정전이나 직원 실수 등으로 음식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 자체의 신선도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표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스티커에는 유산균 젤이 있어 생산자가 정해놓은 보관온도나 기간이 지나면 젤의 색깔이 변한다. 김밥·도시락·샌드위치처럼 상하기 쉬운 제품에는 유통기한 표시와는 별도로 타임바코드가 찍혀 있다. 계산할 때 바코드 인식기에 상품을 대면 유통기한이 지났는지 여부가 모니터에 나타난다.

풀무원은 녹즙 생산 때 신선초·케일 같은 원료가 오염됐는지 철저히 살핀다. 이런 안전장치를 위해 연간 26억원을 쓴다고 한다. 정부에서 1년에 한 번 실시하는 검사와 별도로 두 달에 한 번씩 89가지 농약검사를 한다. 또 법적 보관온도는 섭씨 10도이지만 섭씨 5도가 넘으면 경고 시스템이 작동한다.

◆“내 안전을 지켜야 고객도 지킨다”=‘택시 뒷좌석에 타더라도 안전벨트를 매라. 그렇게 하지 않고 사고가 나면 즉시 해고다’. 듀폰코리아 직원이라면 누구나 수시로 듣는 말이다. 이 회사의 대두단백사업부 김영희 과장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도 계단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고 전했다.

김숙경 이사는 “자신의 안전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남이 먹는 식품이나 제품을 연구개발할 자격이 없다”고 강조한다. 듀폰코리아의 사무실에서는 주의할 게 더 많다. 일회용 종이컵에는 반드시 안전손잡이를 달아서 사용해야 한다. 볼펜·연필의 심을 위로 향하게 꽂아서도 안 된다.

이 회사의 모든 복도 코너에는 볼록거울이 설치돼 있고, 쓰레기통은 화재에 대비해 철제만 사용한다. 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이 회사의 안전사고 발생은 국내 산업계의 50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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