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할리우드 코미디物 영화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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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코미디는 크게 두 형태로 대별된다.아이들의 놀이처럼 순진무구한 웃음이 연속되는 가벼운 희극형과 예리한 풍자로 생각하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무거운 드라마형이 그것이다.
대개의 코믹물은 두 길중 하나를 선택하게 마련이다.둘을 한꺼번에 섞은 영화는 여간한 솜씨가 아니고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 21일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각각 한국관객에게 내놓는 코미디 『박봉곤 가출사건』과 『케이블 가이』는 그런 점에서 대조적인 영화다.『박봉곤 가출사건』은 양자를 잘 섞은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볼만한 코미디물로 자리잡은 반면 『 케이블 가이』는 연출과 배우 모두 전자와 후자 사이를 모호하게 오가다 어느 쪽의 이점도 챙기지 못한 아쉬운 영화가 되고 말았다. 『박봉곤 가출사건』은 어린시절 소꿉친구와 평범한 연애끝에 결혼해 가수의 꿈을 접고 주부가 된 여인(심혜진)의 가출기다.
영화는 집에 갇혀사는 주부들의 탈출심리를 초반부의 「오리」신으로 대변하면서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한다.상영 10 여분만에 주인공의 가출이유가 관객에게 해명되고 그때부터 밤무대 가수로 뒤틀린 성취를 한 주부 박봉곤,영문도 모른채 아내를 찾아나선 남편(여균동),남편의 주문으로 박봉곤을 찾다 그를 사랑하게 돼버린 엑스(안성기)의 삼각게임이 생략과 비약을 반복하는 재치있는구성 속에 흥미있게 진행된다.
서로 헤매던 주인공 셋이 초반부터 주위를 맴돌던 악당들과 한자리에 모이는 마지막 처리가 절묘하다.가출주부가 남편을 버리고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결말에 보수적인 관객은 신경질적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상업영화의 예정된 종결을 피해간 감독의 시도가관객들에게 영화의 풍자정신을 어느 정도까지 전달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반면 『케이블 가이』는 주연 짐 캐리 한명의 출연료만 『박봉곤 가출사건』 총제작비의 10배인 1백60여억원(약 2천만달러)이 들어간 할리우드의 야심작이었지만 작품의 질은 그에 못미쳐아쉬움을 주는 영화.
짐 캐리를 어린시절 상처 때문에 주위의 애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편집증환자로 설정한 것은 그저 우습기만 했던 과거 배역에비해 신선한 시도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에만 기댄채 코미디와 호러물의 경계선을 따라가다 막판에 돌연 TV의 지배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에 맞서는대형 풍자극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예의 일그러진 표정연기로 시종 관객을 웃기고 놀라게 하 던 캐리가 갑자기 『TV가 내 인생을 망쳤다』는 유언을 남기고 TV안테나 위로 투신하는 결말은 솔직히 황당하다.
특히 『당신네(관객)도 TV에 넋빼고 있지 말고 책을 읽어라』는 캐리의 절규는 『TV대신 우리 영화를 보라』고 말하고 싶은 할리우드의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 듯해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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