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대통령의 자질과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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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전 미국 CNN방송은 「대통령의 자질」을 주제로 한 특집을 방영했다.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역대 대통령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가원수가 갖춰야 할 자질을 점검하는 기획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대통령직이 지극히 고독한 자리며,국정 운영을 위해 가장 요구되는 자질이 「방향감각」과 「용기」라는 데 공감했다.아울러 대통령은 권력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미국 현대사에서 대통령직과 관련해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케네디대통령 암살,베트남전 개입과 패전(敗戰),워터게이트 사건을 든다.
이같은 사건들과 관련해 아직 생존해 있는 포드전대통령이 닉슨사면 결단을 내렸던 당시의 심경을 잔잔 히 서술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대통령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닉슨사면 문제에 대해 조속한 결단을 내리지 않고는 당시 중대한 국익이 걸린 대(對)소련 관계와 어려운 경제상황을 처리하는데 인간적 한계를 느꼈다고해명했다.
대통령직이 요구하는 자질을 염두에 둘 때 1년여 남은 선거를앞두고 집권당내 수많은 대선 주자(走者)들이 거론되고,이들의 동정(動靜)이 연일 신문지면을 채우는 우리의 모습은 건강한 풍토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일부에서는 차기대권 주자들의 자격문제가 거론되고,특정 출신지역.특정계보 인사들의 부적격 논의도 일고 있다.그렇다면 이 경우 피선거권이 있는 이들은 누구나 선거에 나설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이해(理解)는 어디로 갔는가.
특정 후보를 겨냥해 「밀어내기」에 나선 정치인들의 행태는 정작 선거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밖에말할 수 없다.결국 당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정강(政綱)은 있되 철학이 담기지 않고 그나마 이를 준수하지도 않는 정당에서 당 총재 의중이 대권후보 결정을 압도하는 한국 정당을 붕당(朋黨)이라고 칭한 어느 후보의 지적은 정당하다.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업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그러나 당내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정치 현실을 「우리식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傲慢)일수 있다.
누구나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는 있지만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자격은 존중하되 자질을 논의하는 것이 대선 논의의 정도(正道)다.대선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자격을 내세우기에 앞서 스스로의 자질을 냉정히 생 각해 주길 기대한다.
길정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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