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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眼帶가 필요한 사정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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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8월23일 선관위가 선거비용실사결과를 발표할 때 이제 그래도 나라모양이 좀 되어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국민들이 많았다.「30당 20락」설이 오가는 속에서 우리의 체감기준에는한참 못미쳤지만 그래도 20명의 의원이 고발되었 고 특히 여당의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그런대로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선관위 발표 당일의 분위기는 그 20명의 목이 모두 날아갈 형세였다.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검찰에서는 선관위의 고발내용을 수준미달로 평가절하하면서 기소할 의원이 거의 없다고 나왔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4.11총선비용실사결과가 나오기까지이른바 「90일 작전」의 이면에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즐비하게 신문지면을 채웠던 것을 본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국세청직원 3백2명을 포함하여 총 1천7백9명이 「첩보 전을 방불할」 이 「작전」에 동원되어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선관위측으로서는 「희색이 만면」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검찰이 고발내용을 검토해 보고 기소할 의원이 없다고 하니 국민들은 어디에다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몰랐다.실사기한까지 연기하고,수천명의 공무원을 동원한 것이 겨우 이꼴이냐고 선관위를 욕해야 할지,기껏 선관위 가 고생해 조사한 자료를 검찰이 깔아뭉갠다고 해야 할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며칠 후에는 또다른 해프닝이 있었다.국회 개원 벽두 근 한달을 소모하며 극한대치 끝에 타협해낸 부정선거조사특위가 해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여야가 동의한 합의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회의 한번 열지 못하고 해체된 셈이다.
선거비용조사와 그 귀추에 국민들이 얼마나 따가운 시선을 주고있었는지 안다면 조사하는 흉내라도 냈어야 마땅하다.이 분들 눈에는 국민이 보이지 않는가보다.
그러더니 결국 일이 터졌다.이번에는 이명박의원의 전 비서가 무려 6억8천여만원의 선거비용을 신고 누락했다는 폭로가 있었다.신고한 금액의 거의 10배를 누락했다니 선거법을 위반해도 한참 위반한 것이다.
폭로내용이 구체적인데다 언론기관들의 자체 조사결과 폭로내용의일부가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정치1번지 종로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그 정도는 당연히 썼겠거니 생각하지 않을 국민이 없을 터다.부정선거 척결의 뜻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서울지검이나 대검이 맡아 신속하게 처리해 구속기소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검찰은 종로서에 수사를 지시해 놓고 뒷짐만 지고 있다.검찰이 좋아하는 「철야조사」 하룻밤만 하면 「사법처리」 여부가 결판날 사건이다.그러니 경찰에 떠맡기는 검찰의 조치에 의심의 눈이 쏟아질 것은 당연한 일.여당의 유력의원을 우리의 검찰은 또 손대지 못하는가.
미적미적.어영부영.흐지부지.용두사미….선거법 위반사범에 대한수사의 기본 원칙으로 착각할만하다.그러다가 야당의원이 제대로 걸리면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재빠르게 해치운다.서울시교육감선거와관련해 국민회의 부총재를 잡아넣는 일이 그랬다 .
검찰은 이미 선관위 고발과는 별도로 선거비용 부정지출 혐의로회계책임자가 고발된 현역의원 56명을 입건 또는 내사중이라고 했다.그 가운데 역시 신한국당 소속이 32명이었다.이들은 어찌되고 있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이러고도 나라가 잘 된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하늘이 두쪽이 나도 만들어진 법을 지켜야 한다.법과 정의의 요체는 형평이다.엿가락도 아닌 것이,고무줄도 아닌 것이 줄었다 늘어났다 하면 곤란한 일이다.여당의원에게나 야당의원에게나 다 함께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법이다.
그 법의 적용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 눈치만 보고 있다면 참으로 큰 일이다.정의의 여신 디케는 원래 눈을 안대로 가린채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누구인지를 보지 않고 저울을 제대로 달고 칼을 공정하게 사용하라는 뜻이다.
우리의 사정기관에도 안대로 눈을 가려줘야 하겠다.
박원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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