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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이태백 ②] "자신감 갖고 눈높이 맞춰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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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그룹의 '백수 기 살리기 프로젝트' 2기 연수 때 참가자들이 챌린저 코스에서 밧줄을 타고 있다. 기죽어 있었던 백수들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입사하게 되면 배우게 될 팀웍을 기르기 위한 것. 지난해 9월 실시된 2기 프로그램은 지방대 출신 구직자들이 대상이었다.

취업 성공의 첫걸음은 기업이 어떤 신입사원을 원하는 지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된다. 취직은 자신이 선택하는 게 아니고, 선택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태백' 현상의 밑바닥에는 자신의 입장에서 실력을 얘기하고 선택되지 않으면 회사나 사회를 원망하는 구직자들의 심리가 깔려있다. 이는 가장 경계해야 할 취업관이다.

그런데 한화그룹 홍보팀 유덕종(40) 부장은 이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계속되는 실패 등으로 인한 '자신감 결여'다. 그는 스스로에게 조차 자신이 없는 사람을 기업이 어떻게 뽑아주겠냐고 반문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정신 덕목에 기업들은 높은 점수를 준다는 뜻이다. 취업 관련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해본 유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입니다. 쓸데없이 높은'자만심'과는 다르죠. 면접장에서나 기본적인 삶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긍정적이냐, 자신감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달라지는 걸요. 자기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일을 맡기겠어요?"

▶ 한화그룹의 ‘백수 기 살리기 프로젝트' 2기 연수 때 참가자들이 모의 면접시험을 보고 있다.

유 부장은 한화그룹이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백수 기 살리기 프로젝트'의 실무 책임자다. 즉, 실제로 많은 청년 실업자들을 접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하긴 몇 번 입사 시험에 떨어지다 보면 기가 죽을 수밖에 없겠죠.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과 배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연수 담당자들에게도 무엇보다 백수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라고 했어요. 프로그램도 취업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보다 개인별로 세심하게 보살펴주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뒀죠."

무료로 운영되는 '백수 프로젝트'는 지난해 5월과 9월, 40명씩의 청년층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룹 연수원과 강사진을 최대한 이용해 1.2기 프로그램 운영에 각각 850만원.1200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잡코리아.다음 등의 인터넷사이트와 제휴해 신청자를 접수했는데, 지원률이 거의 10대 1씩이었다. 1기는 서울 주요대 출신들이 대부분이었고, 2기는 아예 지방대 출신만 신청 받았다.

"쉽게 말해 1기는 대부분 눈이 높아서 취업을 못한 경우였고, 2기는 취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사람들이었죠. "

연수는 2박 3일간의 합숙 교육이 기본이다. 이력서 작성법 강의와 MBTI(성격유형지표)검사, 코디와 매너 강의 및 실전 면접 등 실질적인 내용을 위주로, 극기 훈련 및 친교의 시간이 포함돼 있다. 일부 희망자들의 경우 한화그룹 계열사에서 5주 간의 직무체험 연수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체험, 삶의 현장'식의 혹독한 연수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여러가지를 깨닫는 것 같아요. "

1.2기 연수생들의 취직률은 4월 현재 70% 정도. 원래 한화그룹의 신입사원 채용과는 무관하게 진행한 사업이었지만, 올 하반기부터는 신규 채용에도 고려하기로 했다. 참가자들 중에'쓸 만한'인재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2기 수료자들 중 3명이 직무체험교육을 받았던 대한생명에 특채되기도 했다.

"그런데 겉으로만 직장을 구한다고 하지, 취직할 '자세'가 안된 실업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연수생만 해도 50명 가까이 뽑아놔 봐야 결국은 40명 정도밖에 안오더라고요. 연수원 들어가기 바로 전날까지도 꼭 온다던 사람이 별 이유도 없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백수 생활을 면하기 힘들다고 봐야죠."

'이런 사람은 백수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무엇이 있을까? 유 부장에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결과 청년 실업자들에게 가장 먼저 조언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눈높이를 현실에 맞춰야 해요. 자격증 몇 개 있다고 '나도 인재'라고 생각하는 건 자만이에요. 자격증 여러 개 가진 사람은 많으니까요. 외국어 공인 시험 성적이 좋아도 소용 없어요. 성적 좋은 지원자들 사이에서 또다시 서열이 매겨진다는 냉엄한 현실을 알아야죠."

유 부장은 또 방향을 빨리 정하고 경력을 특화시키라고 권했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것보다 중소기업에서 착실하게 실력을 쌓은 뒤 도전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했다. 특히 대기업들은 대부분 능력제로 인사관리를 하기 때문에 입사 시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한화그룹의 ‘백수 기 살리기 프로젝트' 2기 연수 때 참가자들이 야간 산행을 하며 스스로 자신감을 북돋고 있다.

"흔한 자격증과 외국어 성적으로 무장한'범용성 인재'는 많죠. 하지만 요즘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관련 분야에 대한 경력에 높은 점수를 줘요. 얼마 전 우리 사회공헌팀에서 뽑은 직원도 컨설팅 관련 중소기업에 다니던 경력 사원이었죠. 해외 연수를 가서도 YMCA계열 호텔에서 허드렛일부터 다 해본 것 등의 경력을 보고 재론의 여지 없이 선발했어요."

유 부장은 기업.정부도 청년 실업 문제에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임시직 위주의, 단순한 일자리 창출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의 현장체험을 중심으로 해서 직업연수프로그램을 늘려야 합니다. 신용도나 재무구조 등, 중소기업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 믿을 만한 취업 정보도 가능한 한 많이 제공해야 해요. 또 중소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인재를 제대로 키워줄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인재관리능력이 부족한 기업이 많아요. 그러니 입사 후에도 미래를 걸고 다닐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거죠."

이같은 '백수 프로젝트'의 교훈을 토대로 유 부장은 청년 실업자들을 위한 가이드북도 낼 계획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강사진과 연수생들의 도움말 등을 담을 예정이란다. 이미 출판사에 원고도 넘겼는데, 제목이 고민이라고 했다.

"원래 '으랏차차 백수 탈출'이란 제목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백수'라는 말이 들어가면 실제 실업자들이 지하철 등에서 내놓고 읽기 꺼려하지 않겠어요?"

'백수 프로젝트' 3기 프로그램은 다음달 초에 실시할 예정이다. 지방대 출신 장기(6개월 이상) 미취업자가 대상이다. 오는 10일부터 그룹 웹진인 '오픈아이'(www.5pen-i.com)를 통해 신청자를 접수한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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