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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판테온 전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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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고대 로마 사람들은 다신교를 믿었다.전쟁의 신 「마르스」는 가장 깊게 의존한 신이다.「마르스」의가호로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복을 완수하면 로마는 피정복자에게 로마시민이 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이것은 아량이라면 아량,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토요일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18세 흑인 미녀 데니멘데즈가 로마에서 미스 이탈리아에 뽑히는 영광을 차지했다.물론멘데즈는 피정복자는 아니다.12명의 심사위원과 9백만명의 텔레비전 시청자 전화의견에 의한 결정이었다.심사위 원중 두명은 흑인이 이탈리아의 사람과 문화를 대표해서는 안된다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고는 심사위원 자리를 사퇴했다.
두 사람의 반대는 마찰이라기보다 차라리 한단계 높은 화음형이라고 보아야 하리라.반대없는 찬성은 민주주의가 아니다.결국 흑인이라도 예쁘니까 미스 이탈리아로 선택한 이 결정은 현대의 이탈리아인은 다신교는 아니지만 「다인종교」를 믿는다 는 사실을 훌륭하게 증명했다.
이튿날인 일요일 오전에 우리 중앙일보기자 일행 세 사람은 로마의 만신전(萬神殿.Pantheon)을 관광하러 갔다.2천년전이 건물은 만신전으로 지었다지만 현재는 관광객의 구성으로 보아「만인종전(萬人種殿)」이었다.
오랜만에 푸른 날씨라고 안내하는 이곳 유학생 노재덕씨가 말하는대로 판테온 돔 둥근 구멍으로 뚫어진 로마의 하늘은 남빛으로아찔했다.비가 오면 이 구멍은 비를 그대로 새게 한다.대리석 마루바닥엔 이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온 빗물을 말 썽없이 땅밑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작은 구멍을 여러개 뚫어 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판테온에 관광을 간 것이 아니고 참배갔었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공자는 태산에 올라 천하가 좁음을 보았다지만 나는 로마의 만신전에 와 천하가 넓음을 좀 알게 되었다.이런 특별한 공간속에 들어오면 시간도 공간이 된다.
판테온 안에 들어갔던 지난 2천년의 시간은 빗물과는 달리 아무데로도 흘러가버리지 않고 지금도 여기에 그대로 있다.그래서 시간의 긺을 눈으로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큼 거대한 이 만신전을 지은 것은 공화정(서기전 510~30년)시대를 끝내고 제정(帝政)을 연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절의 장군 마르쿠스 아그리파였다.이집트 원정에서 본 만신전의 아이디어를 자기나라 로마의 건 국시조였던 로물루스가 전쟁의 신 마르스에 의해 하늘로 불려갔다는 그 성스러운 자리에 세웠던 것이다.로마인은 남의 것이라도 좋기만 하면염치좋게 모방하는 강한 비위를 가지고 있었다.
배타적 일신교인 기독교 신도가 된 중세의 로마 사람들은 이 만신전을 성당으로 만들었다.자연이든 건물이든 너무 훌륭한 공간이면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헐 수가 없다.다만 낡은 이데올로기는 물러갔다고,거기에 새 이데올로기가 들어섰다고 말만 하면 된다. 잡신(雜神)의 자리에 유일신이 들어간 것이다.그 덕택에 만신전은 지금까지 만신전이란 이름을 그대로 지닌채 온전할 수 있었다.일요일 오후는 「성당」에서 미사가 올려진다.관광객 입장이 일요일엔 오전만 허용되는 것은 이때문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역사는 만신전 안에서 붙박이로 공간화되어 있다.1929년 어렵사리 라테란 조약에 의해 바티칸을 테베레 강 건너로 살림을 줄여 옮겨가게 한 다음 이 만신전 안으로는 현대 이탈리아 독립의 영웅 엠마누엘2세 등의 무덤마저 들 여놓았다.
차라리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역사는 만신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해야 하리라.예를 들어 한국이 남한체제의 승리 아래 통일되고 나더라도 금강산 바위에 새겨진 김일성(金日成) 찬양문은 그대로 남겨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금강산은 로마의 판테온보다도 허물기엔 더 값나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중세의 기독교마저 안 한 것을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면 아예 지금부터 북한체제를 한국체제 안에 끌어안는 아량 혹은 「만신전 전략」이 최선으로 보인다.관광객 퇴장시간이 가까워오는 로마의 판테온에서 생각하니 북한에 있는 동포와 영토를 보존하는 길은 이 것밖에 없어 보인다.
지금대로 두었다가는 북한이 무너지면서 자연스레 중국의 보호속으로 쓰러질 확률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불어가고 있다.
(로마에서.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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