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화유산탐방>3.그리스 산토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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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구릿빛 낭떠러지가 성벽처럼 둘러서 있다.아테네 인근의 피레우스 항을 떠난지 12시간.화산섬 산토리니 내해(內海)로 접어들자 장대한 경관이 신선하고 격렬한 충격으로 다가온다.절벽은 2백~3백 높이로 수㎞에 걸쳐 쪽빛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절벽위 맨 꼭대기에는 만년설이 쌓인듯 새하얀 집들이 투명한 햇살에 빛난다.바다보다는 하늘에 더 가까이 닿아 있는 공중도시같다.산토리니는 독특한 자연경관 못지 않게 드라마틱한 역사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곳.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섬은 한때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진보된 문명을 꽃피웠다.그러나 기원전 1500년께 거대한 화산폭발이 일어나 섬의 문명은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이때의 폭발력은 원자폭탄 5백~1천개와 맞먹는 것이었다고 한다.2백 높이의 해일이 주변섬을 강타했다.이후 5백년간 섬은 버려져 있었다.고대부터 몇차례 폭발을 거치며 원래 하나의 섬이었던 것이 바다속으로 가라앉아 칼데라를 이루고 지 금의 5개 섬으로 분리돼 있다.
1956년에는 지진이 이 섬을 뒤흔들어 2백50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화산재에 묻힌 고대 도시의 유적이 햇빛을 본 것은 1967년그리스 고고학자 스피리돈 마리나토스가 발굴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플라톤이 기술한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가 이곳일 것이라고추정하는 학자도 있다.고대 문명이 어느 순간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린 점등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환상의 섬 전설 때문일까.산토리니의 본섬 티라는 그 면적이 76평방㎞로 우리나라의 울릉도만 한데 섬 구석구석에서 로맨틱한분위기가 느껴진다.인구는 7천명 정도.
가장 번화가인 피라 시내에 들어서면 좁고 길다란 길 양옆으로갖가지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카페와 토산품점이 골목을 마주하고 서 있고 보석점에서는 대도시에서나 볼수 있는 고급 제품들이 즐비하다.레스토랑 벽에 그려진 그리스풍의 벽화가 이국의 정취를 더한다.
피라에서 남서쪽으로 10㎞ 지점에 있는 아크로티리는 고대 문명이 꽃피웠던 도시의 옛 터라 여겨진다.
섬 북쪽 끝에 있는 이아는 소박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자그마한 마을.에게해의 일몰이 장관을 이룬다.
섬 동쪽 카마리 비치는 화산암이 부서져 생긴 검은 모래 해변으로 이름나 있다.여름철 해변은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이따금 요트나 수상 오토바이가 물살을 가른다.
카마리에서 40여분 정도 걸어 오르면 산꼭대기에 기원전 10세기께 고대 도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적지가 나온다.몸이 날려갈 것같은 강풍이 때때로 몰아치는 고원에 서면 잔잔한 에게해 한가운데 떠 있는 화산섬과 다채로운 해안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황온천과 분화구 여행.항구를 출발한 배는 내해를 가로질러 먼저 팔레아 카메니(옛 불탄 섬)로 향한다.섬이 가까워지면서 배는 항해를 멈춘다.화산지대로유황천이 흘러내리고 있는 곳.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승객들은 풍덩 물속으로 뛰어든다.바닷물은 섬골짜기에 다가갈수록 황토색으로 탁하며,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모두들 깊숙한 곳까지 헤엄쳐갔다 되돌아 온다.색다르고 상쾌하다.
사람들이 배로 돌아오면 이번에는 이웃한 네아 카메니(새 불탄섬)로 간다.이곳에서 배를 대고 분화구가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코스.온통 화산재로 뒤덮여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이다.사람이라고는 안내인도 없이 그저 일렬로 줄지어 오르는 관광객들 뿐이다.정상에 이르면 맞은편 티라섬이 그 환상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절벽 아래로 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작은 배들이 정겹기까지 하다.
▶여행정보=올림픽항공이 산토리니와 아테네간을 하루 3~8회 운항한다.요금은 기간에 따라 다르며 성수기에는 편도 1만8천드라크마(약6만2천원)정도.아테네 근교 항구에서 페리와 쾌속선이운항하며 배에 따라 6~12시간 정도 걸린다.페 리 요금은 갑판실의 경우 4천6백50드라크마다.
산토리니 섬에는 두개의 항구가 있다.본섬 티라 시내 절벽 아래로 구항구가 있고 또 하나 아티니오스항이라 불리는 신항구가 있다. 구항의 좁은 부두에서 절벽 꼭대기 마을까지는 급경사의 케이블카로 연결되며 그 옆으로 6백여개의 가파른 돌계단이 지그재그로 놓여있다.걸어서 오르는데 20여분 정도 걸린다.
화산분화구 기행 코스는 구항구나 신항구에서 출발하며 승선료는3천5백드라크마(1만2천원정도).그리스 통화 드라크마는 한국에서 재환전이 안된다.
산토리니(그리스)=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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