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실에 ‘실무의 달인’ 모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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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서울 상도동 숭실대 컴퓨터학부 실습실에서 ㈜NHN 서비스기술기획팀의 경성민 차장(左)이 학생들에게 ‘고급프로그래밍 기법 및 실습’을 가르치고 있다. [민동기 기자]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상도동 숭실대 정보과학관 21101호 컴퓨터학부 실습실.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서비스기술기획팀 경성민(36) 차장이 교수로서 45명의 대학생들 앞에 섰다. 3학점 전공과목인 ‘고급프로그래밍 기법 및 실습’ 강의를 맡은 경 차장은 학생들에게 네이버의 베이징 올림픽 특별섹션 사례를 들어 강의를 이어갔다. 경 차장은 페이퍼시험을 줄이는 대신 NHN에서 수행했던 프로젝트를 학생들에게 주고 교수는 팀장, 학생은 팀원이 돼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실습으로 학점을 줄 계획이다. 다른 교수에게 같은 분야의 이론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김형석(3학년)씨는 “이론 위주의 딱딱한 수업과 달리 이걸 ‘왜’ 배우는지를 알게 됐다”며 “실무자로부터 사례와 같이 들으니 이해도 빠르고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현실과 괴리가 있는 ‘이론의 상아탑’을 벗어나기 위해 ‘교단에 실무자 모시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과거 2년제 전문대학 등이 호텔요리·미용 등 실용학과에서 산업현장 실무 경험자를 초빙교수로 위촉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4년제 대학의 행정학·경영학·공학·법학 등 다양한 분야로 실무자 모시기가 확산되고 있다.

◆행정학과는 구청장, 경영학과는 CEO=서울산업대 행정학과는 올해 2학기 공무원 위탁교육과정의 행정개혁론(3학점) 강의를 박성중(50) 서초구청장에게 맡겼다. 학교 측은 박 구청장이 한 학기 동안 위탁생 대상의 강의로 경험을 쌓게 한 뒤 내년 1학기부터 학부생 대상 전공 강의를 맡길 계획이다. 이 대학 김상묵(46) 교수는 “박 구청장은 행정학 관련 박사학위도 있고 지난해 6월에는 미국 SCIE급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 초빙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경영학과는 신한회계법인의 최종만(51) 대표이사가 ‘회계감사’ 과목을, ㈜종근당의 장정훈(61) 회장이 ‘나의 지도력 개발’ 과목을 각각 맡고 있다. 최 대표는 80여 명의 학생들에게 회계법인이 금감원의 감리에서 어떤 지적을 받는지 등을 실례를 곁들여 설명한다. 장 회장은 존슨앤드존슨의 아시아태평양 사장으로 14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CEO가 가져야 할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수업을 들은 윤지현(4학년)씨는 “가공된 이론적 사례가 아닌 실제 CEO가 겪은 일이라 경영에 대한 혜안을 배울 수 있었다”며 “학생들이 신청하면 1시간 동안 진로나 리더십과 관련된 CEO의 직접 상담도 받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전임으로 모셔라=실무자를 교수로 채용하면서 초빙·객원·겸임 등의 비정규직 자격이 아닌 정규직 전임강사로 뽑는 대학도 늘고 있다. 대학들은 전임교수 초빙에서 지원자격을 실무자로 제한하거나 실무 경험자를 우대하거나 가산점을 주는 방법으로 ‘실무자 모시기’에 나섰다.

경남 양산의 영산대 중국학과는 올 7월 낸 전임교수 초빙 공고의 지원 자격에 ‘중국비즈니스 실무 경력 5년 이상인 사람’으로 명시했다. 또 법률학과도 ‘실무 경력 5년 이상인 지원자 우대’를 제시했다.

건국대 예술학부는 ‘사운드디자인’ 교수 채용에 ‘장편영화 음악감독 및 사운드 디자인 유경험자’만 응시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대구가톨릭대 건축학과도 ‘건축 분야 경력 5년 이상인 사람’으로 지원자를 제한했다. 이 대학 조극래(학과장) 교수는 “교수들 중에 이론 전문가도 있고 실무 전문가도 있어야 서로 보완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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