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금 862억 유용 창투사 10여곳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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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투자 전문업체인 M창업투자회사의 임원 두명은 2000년 8월 코스닥에 등록되지 않은 벤처기업 C사의 주식을 액면가(주당 5백원)에 2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들은 M사가 같은해 9월 정부에서 '벤처산업 육성자금' 87억원을 지원받자 자신들이 사들인 주식을 주당 1,250원씩에 사도록 했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육성하라고 창투사에 지원한 예산으로 자신들의 주식을 고가에 매입하도록 해 불과 한달 만에 3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셈이다.

정부의 '벤처산업 육성자금'이 새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해 4월부터 중소기업청.신용보증기금 등 벤처자금 지원을 담당하는 8개 기관을 대상으로 지원자금 집행 실태를 감사한 결과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지원된 2조5542억원의 각종 지원금 중 862억여원이 부당하게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부당 사용한 창투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원 이후 부도 위기에 처하거나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어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M사 등 지원금을 부당하게 사용한 7개 창투사에 대해 290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창투사 설립요건에 위배되는 I사 등 4사의 등록을 취소했다. 또 I사의 대표이사 등 불법행위 혐의가 있는 창투사 임직원 1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들 창투사들은 ▶정부지원 자격을 충족시키기 위해 창투사 출자금을 거짓으로 납입하거나▶지원자금을 특수관계인에게 불법 투자하고▶회사 자금을 해외에 불법 투자하는 등의 불.편법행위를 저질렀다.

예컨대 I사는 주주들에게 모금해야 할 출자금 21억원을 회사 명의로 금융기관에서 일시 차입한 뒤 정부 지원금으로 메우는 편법을 사용했다. 이 회사는 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할 회사 자금 28억여원을 대주주 자녀들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의 전환사채 매입에 사용하는 등 특수 관계자들에게 불법투자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정부의 적극적인 벤처기업 지원정책을 악용한 벤처비리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벤처산업 전반에 걸친 기획감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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