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한국인의삶>3.풍류정신으로서의 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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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풍류(風流)를 말할 때마다 늘 최치원(崔致遠)의 말에서 그 근본을 찾으려는 노릇들이 때로는 꾀죄죄하게 여겨진다.그것밖에 없단 말인가 하고.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일러 풍류라 한다.유불선을 모두아우르고 있으니 온갖 목숨과 접촉하여 이를 감화한다.』 정치적실패자인 최치원의 한갓 이상이 이 말에는 스며있음을 읽게 된다.그가 가야산중에서 행방이 묘연한 채로 일생을 끝마친 것도 「현묘한 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예부터 이같은 풍류정신으로서의 멋을 삶의 최고 형태로 삼고 있을 진대 그것은 유불선을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본다면 신라 하대(下代)는 이미불교와 함께 노장.원시유교의 윤리를 어지간히 녹여낼 경지였던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데 여기서 「온갖 목숨과 접촉하여 이를 감화한다」는 것은유불선 이전의 고신도(古神道)로서의 샤머니즘이 베풀고 있는 자연법이(自然法爾)의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풍류라는 개념 자체가 바람이나 물을 떠올리는데서 자연과 인간의 생득적(生得的)인 합일을 뜻하지 않은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고대사회는 그것만으로 존속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환경으로 되어 고등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였고,노장(老莊)의 무위자연이나 유교의 인간답기의 규범과 만남으로써 풍류는또다른 습합(習合)단계의 복합성을 갖추게 된다.
고구려 문무쌍전의 기상이나 백제 미륵반가사유상의 절묘함과 율령성(律令性)의 조화,그리고 신라 진흥왕에 의해 창조된 바 「나라의 흥왕(興旺)을 위하여 풍월도(風月道)를 일으켜야 한다」는 의도로 당대 귀족청소년들의 공동체인 화랑을 장 려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풍류는 한민족 고유의 정신적 절정이 되기에충분했거니와 그것은 누가 장려했든 아니든 인위적이기보다 조화적(造化的)인 특징을 갖고 있다.
풍류 혹은 풍월에서의 풍은 바람-밝-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경우 풍은 양(陽)을 뜻하고 월은 음에 속함으로써 풍은 「하늘」이고 월은 「땅」이 되기도 한다.마치 무(巫)가 하늘과 땅을 매개해주는 사람을 표상화하는 것도 풍월도 혹 은 풍류정신의 안쪽에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이런 점에서 우리 고유의 멋이야말로 풍류정신의 동의어인지 모른다.그렇다고 해서 멋 혹은 멋스러운 것을 굳이 이같은 풍류정신의 높은 행위에만 국한시킬 까닭도 없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쉽사리 눈여겨 볼 수 있는 광경이 떠오른다.가령 전남 진도 아낙네들이 보리밭을 매는 쉴참에는 흥에 겨워 노래도 뽑아내고 춤을 추어대기도 한다.쉴 참만이 아니라 밭을 매다가도 한사람쯤 벌떡 일어서서 호미를 든채 너훌너훌 춤판을 벌이기도 한다.그런 판에 저쪽에서 낯선 남자 길손이 나타난다.아낙네들은 그 길손이 지나갈 길에 멱서리를 던져놓고 노래 하나 불러야 그 멱서리를 넘어갈 수 있다고 내외없이 얼러댄다.
노래할줄 모르면 돼지 멱따는 소리라도 내지르고 가라는 것이다.
이런 광경이야말로 어떤 고도의 풍류나 어떤 상류문화의 멋에도뒤떨어지지 않는,민중의 흥과 한이 가장 자연스럽게 농익은 멋임에 틀림없다.
이렇듯이 우리 멋이란 그 차별적인 외양과는 달리 한통속일 수밖에 없는 삶의 풍류화,풍류정신의 생활화를 점철시켜온 것이다.
멋이란 맛에서 생겨났다는 주장을 일차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맛의 형이하학에서 멋의 형이상학으로 승화된 자취가 짐작되기도 하거니와 맛 자체가 이미 멋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는 공교롭게도 예술의 기원이 심리적 기원설,사회적 기원설 및 발라드댄스설로 설명되는 과정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멋의 미학은 진선미 어느 하나에만 집착하지 않고 진과선을 종합하는 결과로서의 미에 이르는 것은,이를테면 칸트의 궁극적 미의식과도 연결될 만하다.
자연 및 우주와의 일여(一如)나 먼곳에의 지향,이기주의와 탐욕의 치유,그리고 여백과 곡선의 우아한 세계현실에의 정신적 조응(照應)과 생에의 맹목적인 집착을 버리는 사생관(死生觀)과 더불어 도(진리)가 곧 아름다움의 세계임을 실현하 는 것이 멋의 긍정적인 역할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멋에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낼 수 없는 지난 날의 현실들을 따져봐야 하겠다.
그것은 통일신라 이후 화랑의 총체적 타락에서 드러나는 풍류의어두운 면이다.또한 풍류와 멋이 사회를 이끌어갈 사회정의에의 무관심이나 허무주의에 떨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게다가 자칫하면 풍류라는 것이 나태와 자기도취 혹은 이웃과의 연대감 결핍이나 물질적 과수요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그 아슬아슬한 신독(愼獨)과 청빈의 고상한 기품과는 다른 한편에서 보여준 사대부들의 질펀한 음풍농월이야말로 멋의 본래 면목과는 머나먼 향락이기 십상이었다.
고대 향가시인 융천(融天)이나 월명(月明)의 지극한 애국과 정토에의 발원이 시를 통해 펼쳐지는 일과 조선후기 죽난시사(竹蘭詩社)동인들이 가을 서대문밖 연못에 배타고 들어가 먼동틀 무렵의 연꽃피는 그 오묘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새우는멋은 사대부들의 질펀한 음풍농월과는 이미 남남이게 마련이다.일찍이 공자가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것을 슬퍼한 나머지 바라건대 동이(東夷)땅으로 가고싶다고 말한 것은 그의 도가 동이족인 한민족의 숙명적이기까지 한 풍류정신으로서의 멋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동 이족의 이(夷)는 꼭 활을 쏘는 자(弓人)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시()」의 뜻에 더 가까워 「물건을 잘 살린다」는 의미였다.물건을 잘 살린다는 것은 먼저 산천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양보하기를 즐겨 다투지 않는다(好讓不爭)」나 유(柔)와 박(樸)의 그 흐르는 물과 같은 심성이 바로 무위와 평화로서의 여백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같은 멋과 풍류는 그것을 사상적으로 더듬어보면 멀리는원효(元曉)의 화쟁(和爭)사상이나 그 뒤로 화담(花潭.서경덕).율곡(栗谷.이이)의 종합적인 이기설과 그뒤 수운(水雲.최제우)의 동학에까지 이르는 과정에서도 그 요인들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류정신으로서의 멋은 정신적 측면과 함께삶의 구체적인 전기에서 더욱 그 생체가 강조돼야 마땅하다.
멋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비작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멋이 없는사회에서는 그것에 대한 능동적인 형성 없이는 결코 멋을 향수할수 없기 때문이다.8.15이후 김구(金九)가 우리가 바라는 나라는 한없이 높은 문화를 누리는 나라라고 말한 것이나 최근 김우창이 그의 지론에서 「심미적 이성」을 말한 것들을 유추하더라도 풍류정신이나 멋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진리 혹은 진실과 선의 세계를 이루는 것으로 끝나진 않고 그것들이 도달해야 할 미적 가치로서의 풍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앞으로의 시대는 미를 완성하는 시대일 것인가.우리 현실은 무엇인가.오랫동안 길들여진 멋과 풍류가 우리들에게 되살아날것인가.이런 과제 앞에 먼저 인간구원의 과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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