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금융위기, 아시아 공동체 발전 계기 돼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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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35면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비롯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은 세계경제 운영의 주도권과 세계 최강의 외교적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인가. 아시아, 특히 한국은 금융위기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이며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미 하원이 3일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미 금융산업의 붕괴는 일단 저지됐다. 그럼에도 미국의 금융불안과 경기침체는 더욱 깊어지고 오래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미국의 세계경제 주도권이 상실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서유럽 국가와 일본은 각국 특유의 문제점으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기 시작했고 유럽 국가들은 설상가상으로 미 금융위기에 감염되고 있다. 또 러시아·중국을 위시한 이른바 신흥경제들은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 경제 못지않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세계경제가 미국과 함께 부침하는 가운데 미 경제의 상대적 우위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각국은 제각기 위기를 겪으면서 나름대로 금융·경제 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경쟁 우위의 새로운 국제적 판도가 형성될 것이다. 그 결과는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한 각국 경제제도의 건전성과 효율성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중 가장 유망한 승자는 역시 미국이다. 물론 이 결론은 미국의 금융 부문이 노출시키고 있는 규제·감독·인센티브 체제의 문제점을 조기에 해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미국은 과거 일본과 달리 비교적 신속하고 과감하게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이런 기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강점인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은행 중심이 아니라 유동성이 깊고 풍부한 자본시장 중심으로 발달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기업가들의 혁신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해 준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미 자본시장의 취약점을 노출시켰다. 그러나 그 덕분에 미국은 필요한 개혁을 통해 보다 건전하고 효율적인 자본시장을 출범시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미국은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하나는 구제금융 출범 과정에서 조성된 계층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금융위기로 ‘메인 스트리트(실물 부문)’의 서민이 피해를 보는 반면, 위기에 대한 책임이 있는 ‘월스트리트(금융 부문)’의 부유층은 구제된다는 점에 대해 서민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유권자는 이런 반감 때문에 금융위기에 대한 공화당의 책임을 물어 사회 형평을 중시하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가 당선되면 미 정부가 경제활동에 대해 무리하고 과다한 규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미 경제의 경쟁력을 저해할 것이다.

미국의 또 하나 문제점은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다. 이로 인해 미국은 세계 최대의 대외채무국이 되었다. 주요한 대미 흑자국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달러 형태로 미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달러화 가치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또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제약한다. 미국 자신을 위해서나 세계 안정을 위해서나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 내지 완화해 나가야 한다. 미국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어렵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 경제와 세계경제의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미국은 국제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중국·인도·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 이들 경상수지 흑자국이 국내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해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들 아시아 국가의 금융 부문과 자본시장이 낙후돼 각국의 국내 투자·소비는 억제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미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 부문의 선진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이들은 21세기 들어 자국 내 금융센터를 발전시켜 국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미 금융위기를 통해 미국식 시스템의 강·약점을 배워 활용해야 한다. 금융불안 요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규제·감독 체제 발전에 공동보조를 취해야 한다. 또 각국 자본시장을 통합해 나가는 연환계(連環計)를 추구해야 한다.

아시아는 상호 협력해 금융·경제 개혁을 독려하고 아시아 금융공동체를 발전시키면서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운영하는 아시아 세기(Asian Century)를 열어 나가야 한다. 한국은 이런 지역협력을 주도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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