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 체계적으로] 4. 北 노동생산성 증진 방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교육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컴퓨터로 남측 연예인 사진을 보여줬더니 감시요원이 '황색바람'(자본주의적 요소)은 걷어치우라우'라고 소리를 질러 분위기가 썰렁해졌지요."

북한 기술자들에게 정보기술(IT)교육을 하고 있는 국내의 한 기업 관계자가 2001년에 겪었던 일이다.

그러나 그는 "1년여가 지나자 그런 '의혹의 눈초리'는 없어지고 교육생들은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자세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인들을 해외에 파견해 컴퓨터.농업 등 각 분야에서 전문 기술을 습득하고,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 대상국은 미국.중국을 비롯해 호주.베트남 등 수십개국에 달한다.

그러나 아직 초보 수준이라는 게 전반적 평가다. 하나비즈닷컴의 문광승 대표는 "북측 경제인들은 수요자.사용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마인드가 부족하고, 상품을 왜 TV를 통해 광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영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전임연구원은 "남북한 기술인력의 수준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앞으로 남북 경협이 확대되더라도 북측에서 적절한 인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의 인력 교육에 나서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으면서 실현 가능성이 큰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과학기술이나 경제 관련 서적의 지원과 개성특구에 직업훈련원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 김일성종합대학 중앙도서관을 방문했던 대북 민간 지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외국 기술.경제 서적 중 대부분이 80년대에 발행된 것이고, 가장 최신 책이 92년에 발행된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런 탓인지 북한은 최근 우리 측 지원단체에 과학기술 서적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오고 있다.

북한과 IT 관련 서적 번역사업을 진행 중인 영진닷컴 등은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하는 북한 인민대학습당에 이 회사가 출간한 IT 관련 서적 1만권을 제공할 계획이다. 한상진 사장은 "남한에선 IT 관련 책들이 출판된 지 1년 정도 지나면 소비자들에게서 외면당한다"면서 "이런 책들을 북한에 제공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서적의 지원은 북한 당국이 IT 인력 개발에 강력한 의지가 있음을 감안할 때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한 기업이 개성공단 등 북한 지역에 진출할 때 고용하는 북한 인력의 노동생산성은 사업의 성공에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아직 북한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수로 건설 공사에서 일했던 북한 근로자의 평균 노동생산성은 남한 근로자의 36%로 나타났다. 따라서 개성공단 등에 직업훈련원을 정부 차원에서 건립, 북한 근로자들에게 해당 분야의 기술이나 무역 실무 등을 가르친다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조성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은 "북한 근로자들에게 실무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시설과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면서 "개성.신의주특구 등지에 직업훈련원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특별취재팀=통일문화연구소 이동현 전문위원, 정창현.고수석.정용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