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무엇을 남길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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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월초 케임브리지의 풍경은 분명 여름의 마지막 자락이다.
찰스강을 사이에 두고 보스턴시가를 마주보는 대학도시 케임브리지는 하버드와 MIT등 명문대학이 모인 곳이다.
노동절 연휴에도 불구하고 신입생과 복학생들및 기숙사에 짐을 날라주려는 부모들로 붐볐다.활기넘치는 하버드대 광장을 배경으로서울의 캠퍼스가 떠올랐다.그리고 학생시위로 멍든 캠퍼스에서 신학기를 맞는 우리 대학생들의 어두운 표정을 상상 해 본다.
보스턴지역에만 해도 2백년 넘은 캠퍼스의 유서깊은 전통,처음개통된 후 1백년이 지나도록 끄떡없이 움직이는 지하철을 미국의선조들은 남겼다.그러나 미국인들이 남긴 유산 가운데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건강한 캠퍼스다.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교육열에 있다는 주장은 새삼스럽지 않다.더욱이 아시아의 장래를 밝게 보는 이들은 해외유학 인력의귀국추세를 들기도 한다.
21세기 아시아의 장래를 논하기 위해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메가트렌드』의 저자 존 네스비트는 유난스레 아시아의 부상(浮上)을 역설하는 사람이다.유럽과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속에 주눅들어 지내온 아시아인들에게는 듣기좋은 얘기다.
네스비트는 세계중심의 축(軸)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추세를 여러 실례를 들어 설득력있게 설명했다.그러나 아시아의 역동성과 함께 아시아인들의 자긍심과 전통에 대한 자각을 들며 미래를 낙관하는 그의 논지에 쉽게 편승치 못하고 우리 자신 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이 북받쳐옴을 가눌 길 없었다.
앞만을 보며 달려온 우리의 지난 모습에서 후배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어렵사리 쌓아온 업적에 후배들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부상하는 아시아의 일부로 밖에서 평가하는 역량만큼한국은 제몫을 해내고 있는가.
어려운 경제상황,어지러운 캠퍼스,국가의 장래보다 자기 앞가림에 바쁜 정치인들.
아시아의 밝은 미래를 점치는 네스비트지만 『미래는 현재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질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생각은 자신의 전통에 뿌리를 내리되 행동은 세계를 상대로 하라.』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는 그의 조언(助言)은 자신의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선배들의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의 장래까지 낙관할 수 없다는 말로 들렸다.
「21세기를 대비하자」라는 더이상 생소하지 않은 구호(口號)는 장래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이 순간에 심각히 생각할 때 비로소 실체를 갖는다.그리고 후세에 남길 값진 유산은건강한 대학캠퍼스에서 만들어진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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