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방송-SBS주말극 『행복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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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TV연속극을 이야기할 때 「일상성의 반복」「엿가락 늘리기식」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기약없는 횟수를 채우기 위해 평이한 소재를 약간씩 변형해 반복한다든가 짤막하게 묘사해도 되는 상황을장황하게 늘어놓을 때 하는 말이다.간혹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인경우 끝을 맺는 것이 아까워 눈치보다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빠지는함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SBS 주말연속극 『행복의 시작』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려는듯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를 빠른 속도로 몰아치면서 상큼하게 출발했다.진유경(이휘향 분)은 재계의 여왕벌인 동시에 민전무의 꼭두각시였고 복잡한 과거를 현란한 미소 뒤에 감추고 푼수끼 있는 엄마로 시치미떼고 살아가는 여자다.그녀의 딸 신나라(고소영 분)는 엄마를 물가에 나간 어린애 보듯 숨죽이고 보살피는게 피곤하고 성가시면서도 엄마와 지나치게 밀착돼 있다.이런 모녀를 둘러싸고 여러 가닥 의 복선이 깔리고 이런 복선들은 진유경의 다중적 성격으로 인해 더욱 어지럽다.이렇듯 『행복의 시작』은 두 모녀의 혼란스런 삶 속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며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의 진행에 궁금증을 품게 만든다.진유경역의 이휘향의 연기를 보는 것도 이 드라마를 보는재미중 하나다.그녀는 진유경의 굴곡진 삶과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변화를 그녀만이 간직한 독특한 미소와 이죽거림으로 잘 살려내고 있다.그러나 이 드라마는 극의 주제나 전개방법에 있어 처음부터 일 말의 불안감을 주었다.초반의 속도와 긴장감을 유지한채 극의 중반까지 치달아 갈 수 있을는지 연속극으로서는 너무일찍 모든 카드를 보여줘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그리고 그 걱정이 현실이 돼 나타나기 시작했다.모녀가 시골집으 로 이사하면서부터 가세한 이웃들의 비중이 사뭇 크기 때문이다.
사실 진유경과 도예가(이정길 분)의 극적인 만남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이웃을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그런데 모녀와 이웃과의 마찰이 자주 일어나면서 그 이웃들의 삶도 드라마의 한 줄기를 이루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팽팽하던 활시위가 갑자 기 느슨해져버린 느낌을 준다.
전상금 여성단체協 매스컴모니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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