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차가 몰려온다 ④] 끊임없는 연구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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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연구소는 '사는 기쁨,파는 기쁨,만드는(창조하는) 기쁨'이라는 혼다의 세 가지 경영 이념 모두를 만족 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도치기현 혼다 종합연구소. 10만평 부지 위해 각종 자동차 연구소와 실험실이 들어서 있다.혼다 기술의 산실이다.

실내형 다목적 충돌 실험장에서는 지난달 22일 혼다의 중대형 세단 '레전드'와 경차 '라이프'의 충돌 실험이 열렸다.2000년 3월 문을 연 충돌 실험장은 높이 약 30m에 1만3000여평 규모다.총 800억원 정도가 투자됐다.

들어서자 마자 탁 트인 넓은 공간이 꼭 실내 운동장 같은 느낌을 준다.사방 100m 이내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다.천정 중앙 아래 매달린 콘트롤 룸에선 충돌때 고속 비디오 촬영과 속도 설정 등을 조작한다.

충돌시험 담당 가미지 팀장은 "이 실험장은 자동차끼리 충돌 뿐 아니라 보행자나 모터사이클 등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속도와 각도에서의 충돌을 재현할 수 있다"며 "정면 뿐 아니라 15도 각도씩 변화를 주며 측면 충돌 실험을 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충돌 차량의 가속을 내기위한 레인의 길이는 약 130m다. 최고 충돌 속도는 각각 시속 80km까지 설정이 가능하다.

이날 실험에 사용한 레전드는 2000년까지 대우차에서 '아카디아'라는 이름으로 팔려 낯 익은 차다.중량 1800kg에 가격은 400만엔(4400만원) 정도다.라이프는 지난해 하반기 나온 신차로 배기량 660㏄이하의 경차다.중량 1000kg에 가격은 90만엔(990만원)이다.

안내를 맡은 아시아 담당 나가이 홍보팀장은 "충돌때 상대편 차의 충격을 줄여 주는 혼다 특유의 충격 흡수 차체구조(2중 차체구조)의 안전성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덧붙인다.

잠시 후 중앙 콘트롤 룸에서 충돌 시험 20초를 알리는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다.

"…산(3).니(2).이치(1).제로."

대각선으로 마주 본 두 자동차는 순식간에 시속 50㎞(상대속도는 100km/h)의 속도로 달려와 실제 교통 사고에서 많이 발생하는 정 중앙의 측면인 운전석,조수석 부분으로 충돌했다.'쾅'하는 굉음과 함께 전면부 에어백이 터졌다.일순간 긴장 속에 에어백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고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곧이어 사방에서 뛰어 나온 연구원들은 즉각 차량의 충격 흡수구조가 더미(사람처럼 만든 모형) 인형의 피해를 얼마나 줄였는지 체크한다.한 대의 차량안에는 컴퓨터에 충격 피해를 전달하는 장치인 G-센서가 약 200개씩 달려있다.

혼다 관계자는 "실내 실험동에서 연간 600~700건의 충돌실험을 실시한다"며 "실험 결과는 일주일 만에 모두 데이터화해 신차 개발에 즉각 반영한다"고 설명했다.실험 비용은 차량 가격을 포함,모두 1300만엔(1억4300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실험 결과 라이프의 충격 흡수 차체 구조가 안전벨트를 한 탑승자를 보호해줬다.특히 이 구조는 무릎 이하 부분의 충격을 경감해주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미지 팀장은 "이같은 여러 번의 충돌 실험 결과는 모두 라이프 출시 이전에 반영돼 현재 가장 안전한 경차로 평가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험실에선 차량 충돌 뿐 아니라 보행자 충돌을 대비한 실험도 한다.사람처럼 생긴 더미 인형을 실제 달리는 차와 충돌시켜 신체 외부의 피해뿐만 아니라 내장기관의 피해까지 파악할 수 있다.머리.목.가슴.허리.다리에 가해지는 가속도와 충격이 모두 데이터로 나온다.차량에 전달된 데이터와 인체에 가해진 충격을 종합 분석해 보행자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끔 차량 범퍼와 정면부를 설계한다.

혼다는 이같은 연구 개발 투자로 안전성에서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지난해만 연구개발비로 매출액의 5% 정도인 4000만엔(4조4000억원)을 썼다.

기자는 2001년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당시 싼타페로 고정 보호벽에 정면 충돌하는 실험을 본 적이 있다.국내 업체중에 가장 앞서 있는 현대차는 정면 충돌 실험실을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 각도를 달리하는 측면 충돌에선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국산차는 이제 일본차와 세계 시장에서 한판 겨뤄야 한다.

문제는 국산차의 제조 원가는 자꾸 올라가고 일본차는 거꾸로 떨어지는데 있다.가격 경쟁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결국 선진 업체를 따라 잡으려면 안전 등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를 집중해 빠른 시간내 보다 싼 가격에 실용화 해야 한다.그렇게 할려면 연구소에 힘이 실려야 하고 우수 인력이 모여야 한다.

혼다는 72년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가 물러난 뒤 사장에 오른 5명 모두 이공계 대학을 나온 연구소 출신이다.그만큼 연구 인력에 대한 우대가 대단하다.이날 기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에 나온 10여명 연구원들의 진지한 태도와 자신감 속에서 혼다의 미래 사장을 보는 듯 했다.

도치기=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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