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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黨바뀌어야한다>6.정당 운영자금 공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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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한국당 서청원(徐淸源)원내총무의 공식적인 한달 판공비는 2천만원이다.그나마 『1주일이면 동이 나 나머지는 개인돈을 쓴다』고 하소연한다.2천만원이면 우리 근로자들의 월평균 급여가 1백22만원이니까 1년5개월을 한푼도 안쓰고 모아야 되는 돈이다.대표를 포함한 신한국당 4역의 전체 판공비는 월 7천만원이 넘는다.『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돈이 생기며 어디다 쓰는거냐』는질문이 나올 만하다.
금년에 각 당이 선관위로부터 지급받는 국고보조금은 총 2백52억원이다.
3천1백만 유권자 1인당 1년에 8백원씩 걷었다.대선이나 총선이 있는 해에는 선거국고보조금이 별도로 지급된다.국민들 입장에선 좋든 싫든 모든 정당의 후원자가 돼 있는 꼴이다.
국고보조금이 생긴 건 80년 신군부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다.
5공은 정당 운영의 내실화를 내걸고 이 제도를 채택했다.
89년 국고보조금은 국민들이 부담하도록 법이 만들어졌다.처음국민 1인당 4백원씩이 배정됐다.91년 6백원으로 조정됐고 94년부터는 8백원으로 올랐다.5년 사이 두배로 늘어났다.
시시콜콜한 문제를 놓고도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여야는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이해가 일치했다.
문제는 두가지로 요약된다.첫째는 천문학적 액수의 국고보조금을정당에 지급할 필요가 있는지의 여부고,둘째는 국고지원을 하더라도 그걸 어디에 쓰는지 감시할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정당에 대해 국고보조금을 지급한다.얼마전 『정당의운영 경비를 왜 국민이 부담해야 하느냐』며 한 시민이 헌법소원을 냈다.연방헌법재판소는 그런 주장을 『이유있다』고 받아들였다.그래서 한동안 정당에 대한 국고지급이 중단됐었 다.결국 우여곡절끝에 현재는 공식적인 당운영에 한해서만 보조금이 지급된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국고보조금이 지급되는 나라는 일본과 유럽 한 두 나라 이외에는 없다.
미국의 경우는 정당보조금이 없다.대신 대선이 치러지는 해 「대선보조금」을 걷을 수 있다.그것도 연말세금정산서에 유권자가 『대선보조금을 낼 의향이 있다』고 표시할 경우에만 3달러를 세금공제해 걷는다.
정당보조금의 필요론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자는데서 출발한다.
신한국당 강성재(姜聲才.서울성북을)의원은 『정당이 부패하지 않으려면 국가에서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반론도만만치 않다.
선관위 정일환(丁一桓)정당국장은 『정당은 당원이 낸 당비로 운영되는게 정상』이라고 잘라말한다.한데 우리네 정당들은 당비는거의 없고 거의 전부 국고지원금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개인기탁금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선관위에 신고된 여야 4당의 당원수는 9백만명을 넘는다.따라서 이들이 당비만 낸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당비를 내는 당원은 거의 없다.그게 현실이다.여야 각당 수입에서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10%도 안된다.각 당이 현역 의원들.주요 당직자들로부터 해마다 수백만원씩 걷는데도 그렇다.영국 노동당 90%,독일의 사회민주당 64%에 비하면 한심한 처지다.
『당원은 반드시 당비를 내도록 법제화하면 각 당 당원수는 당장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겁니다.』국민회의 이석현(李錫玄.안양동안을)의원의 말이다.
또다른 문제는 정당이 쓰는 자금 내용이 완전히 베일에 가려있다는 것이다.현재 정치자금법은 국고보조금의 용도를 「정당 운영경비중 인건비.사무용 비품및 소모품비.지구당유지비.공공요금.정책개발비.조직활동비.선전비」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조항에 「기타 정당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고 단서를 붙여 사실상 아무데나 쓸 수 있도록 해놓았다.
각 당은 선관위에 1년에 한번씩 「정당회계보고서」를 제출한다.이게 순 형식이다.정당은 『수입액이 얼만데 그중 얼마를 썼다』고 영수증만 제출하면 끝이다.수입이 어디서,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당의 경우 출처 모를 기타 수입이 국고보조금.지정기탁금.
공식후원회비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그러나 이걸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선관위 정치자금과 A씨의 고백이다. 독일에선 정당에 일정액 이상을 납부한 사람은 명단을 공개한다.정당에 돈이 들어오는 루트를 투명하게 한다는 취지다.정당수입에도 「금융실명제」가 도입돼 있는 것이다.그러면 부패가 생길 여지가 없어진다.
우리는 정당이 과연 어떻게 돈을 만드는지,그래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가 의혹 투성이다.게다가 지구당의 경우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는게 아니면서도 지구당이 당원들에게 수시로 향응을 베푸는게 일반화돼 있다.
고려대 김병국(金炳局.정치학)교수는 「당비납부 법제화」를 주장했다.엉터리 당원의 「거품」을 줄이고 당원들의 참여를 유도하려면 당비를 내는 사람에게만 당원 자격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그리고 정치와 돈이 유착을 하면 정치는 썩어들어간다.선진국들이 정치판의 자금을 철저히 통제하고 투명성을 요구하는건 그 때문이다.
우리 정당들도 이제 「돈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밝힐 때가 됐다.정당회계에도 금융실명제가 도입돼야 한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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