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和而不同'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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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과연 미국이구나」 싶게 이번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도 올림픽개막쇼 뺨치게 흥미만점이었던 모양이다.정치행사를 이처럼 쇼로 만드는데 대해서는 준열한 비판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그러나 행사를 하기는 왜 하는가 싶게 내용도 뻔하고 부자 연스럽기만 한전당대회만을 접해온 우리들로서는 그런 행사가 부럽기까지 하다.
국민의 정치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도 그런 행사를 참고할 만하다. 하지만 더 부러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지난주 뉴스위크에따르면 봅 도울과 잭 켐프는 도울이 켐프를 러닝메이트로 정식 지명하기 이틀전에 따로 만났다.그 자리에서 도울은 켐프에게 『팀이란 원래 리더가 있고 보조가 있는 법』이라며 켐프 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이는 켐프가 지난 88년에는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전에 나선 적이 있고,각종 정책에 대한 견해도 자신과 다른 점을 염두에 두고 켐프의 역할과 분수를 사전에 분명히 해두기 위한 것이 었다.
이에 대해 켐프는 도울의 감세(減稅)정책에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도울의 견해와는 달리 소수민족및 여성에 대한 배려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은 지지하며 엄격한 이민정책에는 반대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도울과 켐프의 러닝메이트는 이런 서로 의 입장과 견해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양해하는 바탕 위에서 이뤄졌다. 바로 그러한 점이 부러운 것이다.우리 같았으면 어느 한쪽이자신의 의견을 굽히거나 철회하든가 해야지 서로 다른 견해를 유지한 채로는 결코 러닝메이트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기준에서 보면 같은 당원이라도 개별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견해가 제각각인 것이 조금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아니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이다.큰 방향만 서로 공감하면 됐지 사사건건.개별적인 문제에까지 의견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거니와 굳이 그렇게 만든다면 그것은 결코 민주정당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민주정당에서는 지도층간에도 생각이 갈리고 독불장군마저도 흔히 나온다.그런 여러 갈래의 생각과 주장을 포용하는데서 다양한 유권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품이 생겨나고 갖가지 생각과 주장을 수렴하고 조정하는데서 정책의 차원과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당들에는 언제부터인지 단 한가지의 목소리만 있어왔다.그것도 실은 단 한사람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다.누가 조금만 모난 소리나 튀는 소리를 하거나 돌출적인 행동을 하면 즉각 엄중한 경고나 제재가 따랐다.또 그렇게 하면 모두가 숨을죽이고 납짝 엎드렸다.그래서 결국은 한목소리 한가지 행동만이 남았다. 이른바 문민시대가 개막됐다 해서 이제는 좀 달라지는가했더니 여전히 마찬가지다.대통령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제대로 정견을 발표하지 못하는 침묵의 시절이계속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출마 희망자들이 일찌감치 의사를 밝히고 갖가지 사회의 이슈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래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견해를 여러 각도에서 검증해볼 수 있고 아울러 인간적인 됨됨이도 따져볼 수 있다. 이제는 여당후보냐,야당후보냐 하는 간단한 분류법으로 후보를 선택하는 때도 아니다.대부분의 국민들이 국가경영능력을 검증해보고 싶어 한다.그렇다면 출마 희망자들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펼쳐보일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당내 인사들에게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 것을 두고 확대해석하거나 언로(言路)를 막는 결과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당(黨)의 단합을 위한 당원의 규율과 덕목은 지키면서 각종 문제에 대한 활발한 의견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언급이 최근 모처럼 당내에서 나오는 한두가지 목소리에 대한 제동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국민과 후보간의 소통을 차단함으로써 당에도 유익할 수 없다.
당 전체의 단합을 유지하면서 「독불장군」도 용납하는 여유있고포용력있는 정치로 국민의 후보 접근권과 알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당론이 정해진 후에는 일사불란한 언행이 이뤄져야 하지만 결론에 이르는 과정의 각종 의견은 오히려 유익하다 .어느 정당이든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지향해야 옳을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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