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시리즈는 완전 소설 살인면허도 女국장 M도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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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10면

-초국가적 위협이 뭔가.
“세계화의 산물로 발생한, 국경을 넘는 위협들이다. 알카에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알카에다는 이슬람과 비이슬람권을 넘나들며 글로벌하게 활동하고 인터넷도 사용한다. 옛날 테러는 한 나라에 국한됐는데 지금 국경은 의미가 없다. 콜롬비아 마약은 유럽과 미국 같은 선진국뿐 아니라 점점 더 잘사는 한국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통제 불능의 이민은 질병을 퍼트릴 수 있다. 북한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 난민이 중국과 남한으로 넘어오는데 이 역시 초국가적 위협이다.”

‘MI6 부국장’ 출신 나이젤 잉스터 IISS 초국가위협실장

-한국도 테러 위협에 직면해 있나.
“심각하지는 않다. 미군 기지는 가능한 타깃이다. 알카에다가 한국 정부를 특별히 적대할 이유는 없다. 경유지로 사용하거나, 돈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 활용할 수는 있다. 요즘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조심히 관찰해야 한다. 지금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는 탈레반이 커 가고 있다.”

-아시아에서 초국가적 위협은 심각하지 않다. 그건 미국과 서유럽의 문제 아닌가.
“테러를 놓고 보면 그렇긴 하다. 그러나 기후변화 같은 위협에는 동일하게 노출돼 있다. 몇 년 안에 새로운 트렌드가 생길 것이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환경주의자의 등장이다. 기후변화가 중요해지고 있지 않은가. 환경이 심각히 악화되면 폭력적 환경주의자들이 나타날 수 있다.”

-북한도 초국가적 위협의 원천인가.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다. 미사일이 특히 문제다. 다른 하나는 달러 위조다. 그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100달러의 진위를 의심하게 되면 전 세계적 혼란이 생긴다.”

-미국과 북한은 테러 지원국 해제를 놓고 갈등을 벌인다. 어떻게 보나.
“북한이 테러를 해서라기보다 국제사회에서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데 따르는 갈등이 진짜 원인 같다.”

-제3자 입장에서 판단해 보라.
“솔직히, 기계적으로 보면 테러 지원국을 해제해야 한다. 북한은 오래 테러활동을 안 했다.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악의 축’ 컨셉트가 현재 상황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급변 사태가 생기면 난민들이 발생한다. 초국가적 위협이다. 남한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남한과 중국으로 난민이 몰릴 것이다. 한국은 가능한 한 빨리 물자를 북에 살포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제자리에 앉아 남으로 갈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해야 한다. 타이밍에 맞춰 대량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은 가만히 있겠나.
“중국도 대량 난민을 받아들이기 싫어한다. 국경에서 막을 것이다. 공격적으로 군대를 북으로 들여보내진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이 그렇게 하면 미국도 대응한다. 그러면 북한에서 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게 되는데 그런 긴장을 중국이 원치 않고 미국도 이를 잘 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에 한·미·중 모두 차분하게 대응할 것이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문제가 되고 있다.
“MI6에 31년 근무하면서 나이 많은 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해 내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남한 정보 당국이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이고 잘할 것으로 믿는다.”

007은 F학점 첩보원
화제를 007 시리즈로 옮겼다. MI6에서 부국장을 지낸 그가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을 질문을 쏟아 냈다. 그는 인터뷰 전제로 ‘회사 내 일은 일절 말 안 한다’고 선을 단단히 그었다. 여기서 회사는 MI6이다. 그래서 실제 활동과 관련된 질문은 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 007은 살인 면허를 가졌다.
“아니다. 완전히 픽션이다. 이언 플레밍의 작품이다.”

-영화가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갖고 있나.
“없다. 보라. 본드는 정보 수집을 별로 하지 않고 주로 때려 부수는 액션을 한다. 실제 정보원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정보 수집을 한다. 그게 일상이다.”

-그럼 007은 없다는 건가.
“없다. 007 시리즈도 없다.”

-시리즈 20탄 ‘어나더 데이’에서 본드는 북한에서 아주 인상적인 액션을 벌인다.
“어림없는 일이다.”

-007 시리즈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건가.
“재미는 있지만 다 허구다. 다만 초기 영화 일부와 최근 리메이크한 ‘카지노 로얄’은 현실성이 있다. 나머지는 전혀 비현실적이다.”

-007 영화에서 본드는 여성 국장 M의 지휘를 받는다. 진짜 그런 국장이 있나(여성 M 역은 17탄 ‘골든 아이’부터 영국 여배우 주디 덴치가 맡았다).
“MI6에 여성 국장이 있던 때는 없었다. 책임자는 늘 남성이었다. 그리고 M이 아닌 C로 불렸다. 1909년 처음 조직됐을 때 책임자 맨스필드 커밍이 C라는 사인을 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국내 담당인 MI5에선 여성 국장이 두 명 있었다.”

-007 영화가 엉터리라는 게 MI6의 생각 같다.
“영화를 100% 나쁘게 보진 않는다. 훌륭한 상상의 산물인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재미로 본다. 총을 들고 다니거나 차량 추격전을 벌이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도 그걸 다 안다.”

-그래도 MI6을 홍보한 공로가 있으니 배우에게 명예대사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공로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도 정부가 뭘 해 준 건 없다. 건물 외부를 찍게 해 준 정도도 잘해 준 것이다. 로저 무어가 유니세프 대사를 했지만 유엔이 임명한 것이다. ”

-영화에 신무기 개발의 천재인 Q가 나온다. 실존 인물인가.
“MI6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름 다양한 능력이 있다. 다른 어느 정보기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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