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침대에 ‘홍수’가 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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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15면

얼마 전까지 발기부전으로 고생했던 40대 남성 K씨는 필자의 치료에 호전돼 무척 고무된 상태다. 최근 그가 진료실을 찾아 반가운(?) 소식이라며 환한 미소로 말문을 열었다.

“요즘 아주 제2의 신혼입니다. 아내도 즐거운지 침대가 흥건히 젖을 정도예요.”
그의 자랑에 필자가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자 눈치 빠른 K씨는 뭐가 잘못됐느냐며 의아해한다.

“강 박사님, 발기도 잘되고 아내도 즐거워하는데 뭔 문제라도…?”
“발기가 좋아진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침대가 흥건히 젖었다는 건 그리 반가운 소식만은 아닙니다.”

과거 K씨는 성생활을 술안주로 무용담을 늘어놓던 친구들 앞에서 내심 주눅 들기 일쑤였다. 특히 여성을 만족시켜 이부자리를 흠뻑 적셨다는 친구들의 허세가 제일 부러웠다고 한다. 그런 그가 지금은 침대를 흥건히 적실 정도로 아내를 즐겁게 한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하지만 여기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함정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성적으로 평소보다 더 흥분하면 애액의 분비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침대를 흥건히 적실 정도는 무협지에나 나올 소리다. 실제 그러하다면 대개는 소변 때문인 경우가 흔하다. 즉, 극도의 성 흥분 상태에서 배뇨근의 제어력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소변을 쏟는 것이다. 이는 까무러치게 놀란 아이가 소변을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정상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성행위 시 실제 흥분은 별로인데 이불을 흥건히 적실 정도가 반복된다면 이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여성에게 질염이나 요실금의 문제가 있을 때다. 질염을 앓고 있다면 성행위 시 애액 등 분비가 대폭 감소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분비물이 지나치게 많아지기도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분비액에 대해 해당 여성은 “묽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린다”든지 “분비량은 많은데 윤활성이 떨어져 성감은 오히려 처진다”는 표현을 자주한다.

또 요실금으로 질 근육의 탄력성이 떨어지면 여성은 특별한 성적 쾌감 없이도 성행위 중 소변을 줄줄 흘리기도 한다. 실제로 K씨의 아내를 진단해 보니 성적 쾌감 때문이 아니라 요실금이 심해 소변이 줄줄 새는 상태였다. 이를 두고 K씨는 지레 행복한 오해를 했던 것이다. 일부 요실금 여성은 성행위 시 소변 문제 외에 질에서 방귀가 나오듯 자꾸 가스가 새는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요실금 때문에 소변이 새는 현상이나 질염으로 인한 분비액의 과다 현상은 성적 흥분과 별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시급히 치료해야 할 문제다. 간혹 일부 여성이 ‘사정’하는 경우를 두고 성적 극치감에 흥분액을 쏟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사정액은 너무나 소량에 불과해 침대를 흥건히 적실 수가 없으니 그런 착각은 자제하기 바란다.

과거 성을 해학적으로 다룬 영화 중엔 남녀의 성 흥분에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터지고 홍수가 나는 등 허황된 과장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무용담보다 제대로 된 성 지식이 더 필요한 때다. 침대에서 ‘홍수’가 난다고 해서 여성을 만족시켰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섣부른 초보자다. 이게 재앙인지 기쁜 일인지 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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