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용 “축구 열정 하나로 버텼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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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축구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3년 동안 부산-포항-성남-울산 등 4개 팀을 옮겨다닌 ‘저니맨’이었다. 또한 잦은 부상으로 인해 여섯 차례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부산 시절에는 왼쪽 발목 인대 수술 두 번, 왼쪽 어깨 탈구 수술과 오른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 성남과 울산으로 와서는 왼쪽 무릎 연골 수술을 한 번씩 받았다. 몸은 칼자국으로 얼룩져 있지만 우성용은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다. 수술과 힘든 재활을 마친 뒤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라운드로 돌아와 득점포를 쉼 없이 가동했다.


‘오뚝이같이 일어서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살이 찌지 않는 특수체질에다 녹용과 마늘즙 등 보양식을 잘 먹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한다. 강원도 속초 태생인 그는 또 “바닷가에서 자라 폐활량이 좋고 몸의 회복 속도가 다른 선수에 비해 빠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올 7월 무릎 수술을 받을 당시에도 2~3개월가량 재활 기간이 예상됐지만 우성용은 한 달여 만에 복귀했다.

소리 없이 잘나가던 그였지만 지난해 축구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2004년 이후 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컵 본선에 나갔지만 음주 파문으로 인해 1년간 국가대표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협회가 주최하는 각종 대회에 2년간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K-리그 출전에는 영향을 받지 않아 기록행진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 마음 한 구석에 ‘은퇴’라는 단어를 숨겨두고 고민하기도 했지만 대표팀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K-리그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24일 대전전을 앞두고 구두약으로 자신의 검정 축구화를 닦고 경기에 나선 그는 왼발로 K-리그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값진 골을 터뜨렸다.

대기록을 수립한 뒤 그는 국내 골잡이들의 씨가 말라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프로구단들이 눈앞의 성적에만 급급해 외국인 선수를 공격수로 영입하다 보니 국내파들이 살아남기 어렵다. 용병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고교 및 대학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하기 위해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공격 자원들이 프로에 오면 꾸준히 출장 기회를 줘 적응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외국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벤치멤버나 2군으로 내려가는 게 요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우성용은 “내년 시즌까지 현역 생활을 한 뒤 준비기간을 거쳐 유능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울산=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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