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다로, 표밭 확실한 세습 의원 대거 발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자민당 총재가 24일 국회 중의원 본회의장에서 실시된 총리 지명선거 결과를 기다리며 웃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아소 다로(麻生太郞) 신임 일본 총리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우려했던 보수 우파 일색의 조각은 일단 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신의 정치 노선에 따라 보수 우파 인물들을 골고루 포진시키기는 했지만, 늦어도 11월 초 안에는 실시될 예정인 총선에 대비해 선거에 강한 세습 의원들을 발탁하고 최연소 여성 각료를 기용하는 참신성도 보여줬다.

아소 총리는 이날 조각을 발표하면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 내각’임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앞으로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와 벌일 결전을 위해 국민을 위한 조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아소 총리는 내각은 물론 자민당 내에서의 권력을 강화해 소수 파벌 출신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친정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자민당 내 2인자인 간사장(호소다 히로유키)과 내각 안방살림을 책임지는 관방장관(가와무라 다케오)에 실무형 정치인을 앉힌 것은 이런 의도를 말해 준다. 이에 따라 아소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활용해 인기를 끌었던 ‘극장 정치’도 재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포퓰리즘 정치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정치인 가운데 자신과 성향이 유사한 보수 우파인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전 경제산업상을 재무상 겸 금융상에 임용해 사실상 주요 경제 정책을 모두 맡겼다. 아소 총리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금융위기의 여파를 최소화해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의도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차녀인 유코(優子) 중의원이 소자화(少子化) 담당상으로 발탁된 것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함을 주기 위한 깜짝 카드다. 34세의 그는 일본 내각 사상 최연소 장관을 기록했다. 2000년 오부치 전 총리가 재임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운명하자 외국 유학 중 급히 귀국해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아소 자신을 포함해 각료 18명 가운데 12명이 할아버지·아버지가 정치인이었던 ‘세습 정치인’ 출신이어서 아소 정권은 국민에게 ‘그들만의 잔치’라는 위화감을 줄 가능성도 있다.

◆지한파 외무상=아소 총리가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전 문부상 겸 과학기술청 장관을 외무상에 임명한 것은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뜻으로 보인다. 나카소네는 “미·일 동맹을 축으로 삼아 한국·중국 등 이웃나라와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장남으로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1999년 문부상 겸 과학기술청 장관을 맡아 한·일 양국 학생 교류와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 협의를 위해 한국을 수시로 방문했다. 일본 대입시험에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채택된 것도 그의 작품이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도쿄 시내 한국대사관에 동료 의원 10여 명을 이끌고 와 한국을 응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별세했을 때는 방한해 “고인은 아버님과도 막역한 사이로 20세기 한·일 관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애도했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는 빛을 보지 못했다. 2005년 중의원 해산을 불러온 우정(郵政) 민영화법안에 반대표를 던져 고이즈미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나카소네가 2003년 중의원 선거에서 고이즈미의 ‘정치인 74세 정년론’에 밀려 강제로 은퇴당한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