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은 무엇이고 왜 부실에 빠졌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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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의 본산지인 월가(街)를 뒤흔들었습니다.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던 리먼브러더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Investment Bank)들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메릴린치처럼 다른 회사에 인수당한 곳도 있습니다. 남아 있는 회사도 투자은행이라는 간판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한 채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답니다. 투자은행이란 무엇이고 왜 이런 위기를 겪게 됐을까요.

◆투자은행과 상업은행=투자은행이란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상업은행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은행입니다. 고객에게 예금을 받아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해 주면서 이익을 얻는 게 주업무입니다. 투자은행은 예금과 대출 업무 대신 다른 일로 돈을 벌어들입니다. 주식이나 채권 발행을 돕거나 거래를 중개하고, 기업 인수합병(M&A)에 관여하면서 수수료 수입을 얻습니다. 자금을 빌려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이나 부동산 등에 직접 투자해 이익을 올리기도 합니다. 투자 업무를 통해 수입을 얻기 때문에 투자은행이란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투자은행은 상업은행보다 더 높은 이익을 얻어 왔습니다. 상업은행의 경우 수많은 개인 고객으로부터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을 하고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만큼 벌어들입니다. 예컨대 연 6%의 금리로 1조원의 예금을 받아 8%의 금리로 1년간 대출해 준다면 2%포인트만큼인 200억원을 이익으로 얻습니다. 이 돈으로 직원의 월급을 주고 각종 경비를 써야 합니다.

하지만 투자은행은 다릅니다. 자신의 자본이나 빌린 돈으로 주식이나 채권·부동산·파생금융상품에 다양하게 투자합니다. 만일 값싼 부동산을 사들여 가격이 오를 때 팔아치우면 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이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또 규모가 큰 기업이 증권시장에 상장하거나 M&A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단번에 수백억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합니다. 상업은행이 1년간 열심히 예금과 대출을 해 얻는 이익을 몇 건의 대형 거래로도 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최고경영자(CEO)와 직원들에게 엄청난 연봉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왜 위기를 맞았나=투자은행이 몰락한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터지면서부터입니다. 지난해 6월 세계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운용하던 헤지펀드 2곳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개발된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입니다. 베어스턴스는 이 사건 이후 자금난에 시달리다 올 3월 미국의 상업은행인 JP모건체이스에 팔렸습니다. 다음 차례는 세계 4위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였습니다. 각종 부동산과 파생금융상품 등에 공격적인 투자를 했던 리먼브러더스도 막대한 손실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돈을 빌리기 힘들어졌습니다. 한국의 산업은행에도 투자를 호소했지만 끝내 인수자를 찾지 못한 채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했습니다.

투자은행은 주로 단기로 자금을 빌려 투자를 하는데, 신용도가 추락하면 빚 독촉에 시달리고 다른 금융사로부터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됩니다. 위기를 맞으면 그대로 망하거나 다른 금융회사에 인수당하는 선택만 남습니다. 조금 사정이 나았던 메릴린치(세계 3위 투자은행)는 500억 달러에 미국의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넘어갔습니다.

◆투자은행 시대의 종언=이번 위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것 같았던 세계 1위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와 2위 업체 모건스탠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지난 21일 투자은행에서 은행지주회사로 업종을 바꾸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은행지주회사란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을 휘하에 둘 수 있는 곳입니다. 지주회사 전환으로 두 회사는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긴급자금도 대출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잃는 것이 있습니다. 투자은행은 지금까지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영업을 해왔지만 은행지주회사가 되면 FRB로부터 다양한 규제를 받게 됩니다. FRB는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예금 인출에 대비해 일정한 금액을 준비해 놓도록 하고, 대출이 부실화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유방임을 추구하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이번 위기를 맞아 쇠락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금융 분야에 대한 엄격한 정부 규제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미국에서도 이번 위기 사태를 계기로 미국 금융시장의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틴틴 여러분은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위기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세계 경제에 일어난 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미국의 유력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의 사태는 미국 자본주의 발전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을 정도입니다. 미국의 투자은행을 본보기로 삼아 도약을 꿈꾸던 국내 은행과 증권사도 새로운 발전 모델을 찾아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됐습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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