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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이발사' 부부의 緣 맺은 송강호·문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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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같아 보여요?" 신작 ‘효자동 이발사’에서 자연스런 부부 연기를 보여준 송강호(右)와 문소리. 절친한 선후배인 이들은 한 영화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최승식 기자]

"우리 같은 배우는 있잖니…."(송강호)"우리 같은 배우? 왜 나까지 묶어. 우리가 꽃미남.꽃미녀 배우는 아니라는 소리야?"(문소리)

편한 선후배 사이인 배우 송강호.문소리가 오는 5일 개봉되는 '효자동 이발사'(감독 임찬상)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송강호는 1970년대 유신시절 '그분'의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성한모)를, 문소리는 그 부인으로 엄혹한 시대를 버텨내는 억센 어머니(김민자) 역을 맡았다.

영화는 청와대 턱밑에 있는 서울 효자동에서 이발사로 일하는 한 평범한 사내의 인생 역정을 통해 광복 이후 10.26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우화적으로 들춰낸다. 도입부에서 영화는 특정한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다고 밝히지만 베트남 파병, 1968년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사건, 10.26 등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분'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10.26의 두 주역이었던 경호실장(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김재규)을 암시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저 별일없이 처자와 아옹다옹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소심한 성격의 이발사는 권력자들의 다툼에 말려들면서 소박한 꿈이 깨지고 열살짜리 아들의 신변마저 위협받는 원치 않는 운명에 빠지게 된다. 폭압적인 권력 앞에서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성한모의 모습에 당시를 살아낸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겹쳐진다. 권력 다툼은 그것을 손에 넣으려는 '고래'들 사이의 게임만은 아니었다. 안개처럼 스멀스멀 보통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새우'들의 운명을 휘어잡았던 것이다.

30대인 송강호(37)와 문소리(30)도 촬영 내내 부모님 세대에 대한 상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란 자신은 못 배우고 부족해도 자식한테는 그런 것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열망이 얼마나 강했던가. 못 배우고 가난했어도 자식을 향한 사랑만큼은 깊은 분들이었다."(송)

"옛날 엄마들은 참 씩씩했다. 집안에 돌아다니던 쥐를 연탄집게로 잡아내는 실력은 귀신 같았다. 그게 딱 내 엄마는 아니었을지라도 옛날 엄마들은 다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문)

부산 출신이라 사투리 연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문소리는 "퍼뜩 잠이나 자라"며 아들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쥐어박고, 구충검사용으로 채변을 해야 할 아들이 설사를 하자 "내가 대신 볼게. 땐땐한 걸루"라는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주워 섬긴다. 참, 영화에서는 설사가 중요한 모티브다. 청와대 부근까지 밀고 온 무장공비(共匪)들이 집단 설사병에 걸려 하나씩 대열을 이탈하는 바람에 남쪽의 수색대원들에게 발각된다. 남쪽 정보기관은 이 설사 질환을 '마루구스 병'(칼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이들이 걸리는 병이라는 뜻)이라면서 '물똥'을 싸는 사람은 공비와 접선했다며 잡아 가둔다. 서슬 퍼렇던 시대의 웃지 못할 상황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효자동…'는 언뜻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린다. 뉴스필름을 합성해 케네디 대통령과 톰 행크스가 악수하는 장면처럼 '효자동…'에는 송강호가 닉슨 대통령과 회동하는 한국 대통령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지수가 75인 검프를 통해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요동쳤던 60~70년대 풍경을 그렸다. 검프와 성한모는 닮은 구석이 있다. IQ가 아니라 정치적인 지능이 낮아서다. 그는 정부 시책이라면 순진하게 무조건 믿었고 자기식으로 소화하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면도사인 처녀 민자를 유혹해 덜컥 임신을 시켜놓고는 애를 낳지 않겠다고 하자 하는 말. "사사오입(四捨五入)이면 헌법도 고치는데 배 속에서 다섯달 넘었으면 열달로 보고 무조건 낳아야지."

송강호는 "체제니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가, 살아가는 데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고 말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 시대가 준 상처로 고통받고 있고, '이제서야 말할 수 있다'며 감추어졌던 실상을 겨우 하나씩 걷어내는 상황에서, 한바탕 웃음으로 너무 쉽게 한 시대를 용서하고 건너뛰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우화와 팬터지로 지난 역사를 보려는 태도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오히려 69년생인 감독이, 자신이 체험하지 않았던 현대사에 접근하는 또 다른 '눈'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듯싶다. 그리고 그 성공의 절반은 송강호.문소리의 연기력에 빚지고 있다.

홍수현 기자<shinna@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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