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작업 '한 도시 이야기' 이재용 감독 영상화 재추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1994년 6월 9일 24시간 동안의 촬영을 마치고 새벽을 맞는데 엄청난 업을 진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하루 만에 수백명과 인연을 맺은 거잖아요."

꼭 10년 전의 인연을 다시 추스르는 사람은 이재용(사진)감독이다. 관객들에게는 극영화'정사'와'스캔들-남녀상열지사'로 널리 알려진 그이지만, 실은 데뷔작이 될 뻔한 미완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단편'호모 비디오쿠스'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줄줄이 상을 타 주목받던 때였다. 그는 서울의 다양한 풍경을 꼬박 하루 동안의 촬영에 담아내려는 '한 도시 이야기'라는 프로젝트를 생각해냈다. 자신의 말마따나 "인터넷도, 디지털 카메라도, 영화주간지도, 국제영화제도 없던 시절"이었는데도 그를 포함해 현역 영화인과 사진작가, 학교에 재학 중인 예비 영화인 등이 무려 700여명이나 참여했다. 이들은 스틸 사진기와 홈비디오 등 다양한 카메라를 들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300여명의 인터뷰와 풍경을 담았다.

촬영분량이 어마어마했음은 당연했다. 그러나 제작비 1억5000만원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당시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해 서울시에서 묻은 타입캡슐에 넣기 위해 2시간 분량의 편집본을 만들기는 했지만 결국 극장에 선뵐 최종본은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10년, 감독은 그 때 찍어둔 스틸사진과 동영상.자료집 등을 가지고 오는 25일부터 2주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전시 마지막 날인 6월 9일에는 10년 전처럼 하루 동안 서울 풍경을 영상에 담는 작업인'한 도시 이야기'를 다시 시도한다.

"전시 동안 찾아오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생각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카메라를 든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예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도 한 차례 연락할 계획입니다. 또 10년 전 동영상이나 스틸사진에 찍힌 인물들의 소재를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혹 알려주게 되면 그분들을 다시 추적해보는 것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일종의 인터액티브한 작업인 셈입니다."

10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한 편의 완결된 장편을 욕심내지는 않는다. 각 개인이 찍은 작품이 저마다 완결성을 지니도록 유도하고, 혹 이를 엮어 옴니버스형태 정도로 영화제나 인터넷 공간에서 발표할 생각이다.

"수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이걸 왜 다시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했죠. 그런데 10년 전 작업을 알고 있던 분들이 전시를 하자고 제안해 온 시기가 딱 6월 9일과 맞아떨어졌어요. 마침 저도 장편을 끝낸 뒤라 여유가 있고. 이번에 해보면, 10년 뒤, 또 10년 뒤에도 연속성있는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역시나 '인연'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그는 다음 번 장편영화가 불교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