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손길로…] 8. 이기우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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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장지동 비닐하우스촌. 파릇파릇 돌나물과 싱싱한 상추, 기운찬 부추가 혀끝을 자극했다.

이곳 한쪽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사람이 보였다. 수녀.수사 등이 땅을 파 정화조를 묻고, 파낸 흙을 수레로 날랐다.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젊은이를 위해 화장실을 만드는 중이었다.

이기우(48) 신부가 간식용으로 빵과 우유를 사왔다. 졸지에 장애인 아들을 둔 아주머니에게 "절대 용기를 잃지 마세요"라고 격려했다. 이들 가족은 작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에서 비바람을 피하며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장 1번지' 서울 강남에는 이런 비닐하우스가 1만여 가구나 있다. 강남.서초.송파구 일대에 집중됐다. 한국의 '명과 암'을 극단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기우 신부는 빈자의 '영원한 친구'를 자청했다. 일반 대학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다 사제복을 입은 것도 오직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려는 결심 때문이다.

이신부는 아예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잔다. 서울 우면동에 있는 그의 거처를 찾았다. '바울로의 집'이란 작은 간판이 보였다. 판자를 잇대고, 비닐.차광막을 씌운 그곳에서 그는 수사 두 명과 어울려 산다. 그들은 밥과 반찬도 손수 해결한다.

"주변에는 150여 가구의 비닐하우스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속으로 직접 들어가야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2년 전 이곳으로 왔습니다. 처음에는 경계의 대상이었으나 요즘에는 마음을 열고 지냅니다."

그가 도시빈민과 생활한 것은 올해로 14년째다. 1991년 서울 삼양동을 시작으로 줄곧 빈민사목에 매달려왔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복음의 핵심은, 즉 교회의 존재 이유는 가난한 사람에게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요즘도 빈민이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문제는 가난을 개인의 잘못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빈곤은 사회 구조의 문제입니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고 말하지만, 종교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신부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도 맡고 있다. 선교사 일곱명과 함께 매일 강남 일대 비닐하우스촌을 순례한다. 무너진 집을 고쳐주고, 독거 노인을 돌보고, 반찬을 만들어주고, 후원자를 찾아주고 등등, 일이 끝이 없다.

"요즘의 가난은 예전과 다릅니다. 가난도 대물림된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뒤집어 보면 부자도 세습되는 거죠. 그만큼 사회의 통합성이 깨지고, 그에 따른 부담도 사회가 떠안게 될 겁니다."

그는 종교의 조건 없는 봉사를 강조했다. 물질적 혜택은 빈민이 받지만 정신적 혜택은 교회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천주교를 믿으세요'식의 선교를 모른다. 주민들과 그냥 물처럼 섞인다. 다만 '정신의 자립'은 강조한다. 빈곤은 일시적 지원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원도 횡성에 야영장을 만들고 청소년 스카우트 운동에 주력하는 것도 날로 심각해지는 '가난의 대물림'을 줄이려는 고된 몸짓이다.

글.사진=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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