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록 삭제, 삭제 하는데 그건 법으론 금지된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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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22면

고경효·조영기·이경식(왼쪽부터) 속기사는 여의도 국회 33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긴 산증인들이다. 최정동 기자

“선수(選數)로 치면 제가 의원님들보다 오래됐다고 말하곤 해요.”
조영기(51·여) 서기관의 말에 이경식(53) 과장도, 고경효(50·여) 사무관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 사람 모두 30년 이상 국회의 모든 것을 기록해 온 속기사들이다. 이 과장은 태평로 의사당 시절부터 근무했다. “사무실이 의사당 건너편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오가느라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국회 마을’ 30년 터줏대감, 속기사 3人

수기(手記) 방식으로 기록한 속기 노트.

그 시절엔 속기사 제복도 양복점과 양장점에서 맞춰줬다. 남성에겐 양복에 와이셔츠·넥타이·구두를, 여성에겐 투피스 정장과 블라우스·구두까지 1년에 두 벌씩 제공했다. 현재는 양복과 투피스만 기성품으로 1년에 한 벌씩 준다. 1995년부터는 해외 국정 감사에도 속기사가 동행하다 보니 자비를 들여 여벌을 맞춰 입는 속기사도 있다. 제복은 속기할 때만 입는다.

30년 세월 동안 속기 풍경도 바뀌었다. 직선과 곡선을 이용해 표기하는 수기(手記) 속기밖에 없었는데 95년부터 컴퓨터 자판과 유사한 기계 속기가 도입됐다. 지금은 기계와 수기 비율이 7 대 3 정도다. 신입 속기사들은 모두 기계를 사용한다.

“지금은 수기 속기를 가르치는 곳도 없으니까요.” 고 사무관은 기계에 연결한 전원이 없거나 서서 기록해야만 하는 장소에서는 수기 속기가 꼭 필요하다며 아쉬워한다. 남녀 비율도 확 바뀌었다. 70년대 중반에는 12명으로 이뤄진 한 계에 1~2명이 여성이었는데 현재는 남성이 10%가량이다. ‘속기사=여성’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남성 신입 속기사들은 종종 “어느 부처에서 오신 (공무원) 분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숨죽여 다녀야 했던 11대 국회
“출근했는데 국회 앞에 탱크가 있었지요. 그때의 살벌했던 분위기는 잊을 수가 없어요.”
고 사무관은 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 국회 내에서도 신군부의 서슬이 퍼렜다고 기억했다. 당시 국회 운영위원장이 속기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거슬린다고 말해 속기사 전원이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밑창이 달린 구두를 새로 맞추기도 했다.

“상임위 내용을 녹음한 것도 11대 국회 때부터예요.” 조 서기관이 말을 거든다. 신군부의 등장으로 초선 의원이 대거 등장하면서 직업 정치인 특유의 즉석연설 대신 준비된 원고대로 읽는 의원이 늘었다. 나중에 상임위 회의록을 본 뒤 “내 원고와 조사가 틀리다”며 항의하는 의원들이 있어 녹음도 하게 됐다.

원래 속기는 말한 것을 100% 그대로 적지는 않는다. 문어체 형태로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기 때문에 어법에 틀리는 말은 조금씩 고치기도 한다. 이를 ‘번문(飜文)’이라고 한다. 수기 속기의 경우 작성한 시간의 8~10배, 기계 속기의 경우 3~5배의 시간이 번문에 소요된다.

‘패배(敗北)주의’를 ‘패북주의’로 읽는 등 한자 음독을 잘못해 구설에 올랐던 전직 의원의 발언도 번문했는지 물었다. “당시에는 회의록에도 한자로 기록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웃음과 함께 답이 돌아왔다.

87년 민주화가 바꿔놓은 풍경
이 과장은 87년 민주화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헌법을 만드는 현장에 있으면서 ‘아, 내가 지금 역사를 기록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감격스러웠지요.”
국회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국회가 상시로 열리게 됐고 국감이 부활됐다. 청문회 등 회의가 늘었고 군부독재 시절과는 달리 회의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원내 통제를 벗어난 발언도 종종 터져 나왔다.

“나라는 좋아졌고 일은 많아졌어요.” 고 사무관이 활짝 웃었다.
지방 국감에선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두 사람이 한 조로 속기를 해야 했다. 토요일 아침에 시작해 일요일 오전 5시에 끝난 적도 있었다.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사망했을 때는 속기사도 국회의원들과 함께 변장을 하고 현장 조사에 나섰다. 해외 국감의 경우 속기사가 한 명만 동행하기 때문에 속기사의 생리적 욕구 해소를 위해 정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국회에 많이 진입하면서 정치적 용어 대신 각 분야 전문 용어가 많이 등장했다. “외국 박사에 교수 하시던 분들이 늘면서 영어를 사용하시는 경우가 굉장히 늘었어요. 어떤 의원님은 정말 조사만 빼고 다 영어를 쓰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조 서기관은 약품 이름, IT 용어 등을 익히느라 따로 용어집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엔 쇠고기 특위에서 전문용어가 쏟아져 속기사들이 고충을 겪었다고 한다.

가장 속기하기 힘든 의원은 ‘사투리를 심하게 쓰고 말을 빨리 하는 의원’이다. ‘마카’('전부' 강원도 사투리) 처럼 얘기한 의원에게 회의 후 다시 묻고서야 뜻을 알아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회의록엔 표준어로 번문해 기록한다.

명연설을 기록하는 일은 속기사의 즐거움이다. 이 과장은 “말씀 잘하기로 유명한 의원을 속기할 때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번이 아닌 속기사들이 방청석에 들으러 갈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꼽은 ‘베스트 5’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 고건 전 총리,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김광일 초대 고충처리위원장, 홍사덕 의원. 발언을 그대로 적어도 문장이 되는 정연한 말솜씨에 호소력 있는 목소리, 적당한 빠르기가 공통점이다. 여성 의원 중에선 박영숙 전 평민당 부총재를 꼽았다.

웃음,몸동작도 속기록에 담아
속기는 ‘말’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의 분위기도 함께 담는다.
“표정 같은 걸 다 기록할 순 없지만 (단호하게)라고 써 넣는다든지 (웃음)이라고 표기한다든지 최대한 현장감을 담으려고 노력합니다.”(조 서기관)
“예전에 중국에선 ‘좌동우언(左動右言)’이라고 해서 왼쪽선 천자의 동작을, 오른쪽선 천자의 말을 기록했어요. (지도를 들어보이며)라든지 (고개를 끄덕임)처럼 더 자세히 기록하려고 합니다.”(이 과장)

세 사람은 잘못 알려진 사실 두 가지를 꼭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자꾸 ‘속기록 삭제’라고 하는데 속기록 삭제는 법으로 금지돼 있어요. ‘자구(字句) 정정’만 가능합니다.”고 사무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주억거린다. “삭제해 달라”는 발언까지 모두 그대로 기재된다는 것이다.

“그 발언을 한 것은 이런 의도였다”고 해명하면 그 해명 발언을 그대로 실어서 삭제와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원래 발언을 없앨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단 ‘(일본) 시네마현’처럼 누가 봐도 명백한 실수를 한 경우 해당 의원에게 정정 신청서를 받아 ‘시마네현’으로 수정한다.

속기록 ‘정정’에 관해 이견(異見)이 있다고 한다. “홍사덕 의원 같은 분은 고사성어를 잘못 쓰거나 한 경우도 의원이 발언한 그대로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조순형 의원께선 그래도 역사에 남는 것인데 틀린 것을 기록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하셨죠.”
이들은 “국회의원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알려 달라”고도 입을 모았다.

“국회에선 매일 싸움만 하는 줄 아는데, 우리 부서에 예전 회의록을 요청해 공부하는 의원이 많다”며 “특히 18대 국회의원은 어느 때보다 회의록을 많이 찾는다”며 기대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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