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아시아는 하나다” … 아소 다로의 위험한 일본 예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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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본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총리 이래 근·현대 일본 정치사에 이름을 떨친 총리들이 많다. 이 대열에 도전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간사장이다. 그는 한국에는 극우 보수파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와 관련해 “창씨 개명은 조선인이 스스로 원해서 했다”고 발언했고, “다행히 한국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일본은 다시 회생할 기회를 잡았다”는 막말도 했다.

이런 섬뜩한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그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최근 그가 펴낸 『대단한 일본』을 유심히 읽어봤다. 아소는 이 책에서 일본 민족은 근면·창의·예의바름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하며 경제·과학·문화 등에서도 세계의 사랑을 받는 모범국가라는 주장을 편다. 이런 듣기 좋은 발언은 일본이 갈수록 보수우경화하면서 국민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소는 이런 인기에 힘입어 22일 자민당 총재로 뽑혀 24일 일본 총리로 지명될 예정이다.

아소는 왜 일본이 대단한지를 일본 예찬론으로 ‘입증’하려 한다. 외무상을 지내던 2005년 말 인도를 방문했을 때다. 그는 지하철 공사현장을 견학하러 나가 건설비의 약 70%가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에서 지원된다는 보고를 받고 “가슴 뭉클했다”고 술회했다. 아시아의 선두 국가로서 노력해온 결실이 머나먼 인도에서 꽃피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하철 건설현장 소장의 일본 예찬에 아소는 다시 한번 감격한다. 아침 집합 시간에 일본 기술자들은 항상 예정시간 10분 전에 모여 있기 때문에 예정시간보다 10분이 지나서야 모이는 인도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소는 이처럼 일본은 국민의 자질부터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일본을 “아시아의 실천적 선구자”라고 정의하면서 “일본은 반드시 잘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일본 예찬론에는 소니·마쓰시타·도요타의 성공 스토리가 빠지지 않는다. 아소는 “1960년대 미국 스탠포드대 유학 시절 도요타 자동차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고생한 기억이 새롭지만 지금은 일본 기업들이 전세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예찬론은 만화·라면 등 작은 문화상품에도 이어진다. 그는 “일본 만화는 세계인의 문화상품”이라며 “이런 일본이 국제 사회에 도움이 안된다고 하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국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아소의 일본 예찬론은 일본 우월주의와 극우 보수주의라는 날카로운 발톱이 숨어있다는 점이다. 그가 노리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그의 또 다른 저서 『자유와 번영의 호(弧)』(겐토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의 아시아’를 주창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유라시아의 모든 나라를 둥근 활 모양의 호처럼 연결해 자유와 번영의 지역을 만들되 일본이 리더십을 발휘하자는 제안이다. 대단히 건설적인 제안으로 보이지만 그 발상에는 일본 우월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아소는 이를 위한 수단으로 ‘부국강병’을 주장한다. 일제 침략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있는 시점에 다시 강한 군대를 갖고 무대를 더 넓혀 유라시아의 리더가 되자는 뻔뻔함과 오만에 가득찬 속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아소 다로=1940년 후쿠오카현 출생. 왕족 전용학교인 가쿠슈인(<5B66>習院)대 정경학부 졸업. 증조부가 조선인 강제 징용자 1만6000명을 동원해 막대한 재산을 일군 아소탄광 사장을 거쳐 79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한 뒤 9선을 기록. 자민당에서 외무상·총무상, 간사장 등을 지냄. 외조부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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