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호씨 "대쥬신(朝鮮)제국사"이어 "大不傳" 작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우리 만화사 최초의 본격 SF만화인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56)씨.58년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제비기를 타고 악당을쳐부수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는 요즘 아이들을 얽어매는 『드래곤볼』따위와는 유(類)가 다른 낭만이 깃든 액션만화였다.
66년 도미(渡美)해 94년 소리 없이 귀국한 金씨가 성인과아동 모두를 상대로 한 회화극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뿌리내리고있다.회화극본은 사실주의에 입각해 한 컷,한 컷을 독립된 서양화처럼 그려 그림에 무게를 싣고 독자를 설득한 다는 金씨의 독창적 만화기법이다.
이같은 기법으로 지난해 전5권으로 완간된 타블로이드판의 『대쥬신(朝鮮)제국사』는 동북아를 누빈 한국의 상고사라는 소재와 두터운 질감의 그림이 어울려 『장쾌한 스케일의 처음 보는 극화』라는 평을 얻었다.
이 시리즈는 작가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한 2만5천여질이나 팔려나가 만화(엄밀하게는 극본)도 장서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金씨는 『대쥬신제국사』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부처의 일대기를 같은 방식으로 극화하는 『대불전』(大佛傳)전3권 제작에 들어가오는 9월말 이를 완간한다.이에 앞서 최근에는 순정실화 극본 『두만강』의 첫번째 이야기 『하얀 손수건』을 상 재(上梓)해 회화극본의 소재를 넓혀나가고 있다.『두만강』은 그가 『대쥬신제국사』 취재차 10여차례 둘러본 만주지역과 미국시민권으로 여러차례 찾은 북한 방문에서 알게 된 북한주민들의 고난에 찬 삶을그리게 된다.
『라이파이 상대편의 상징인 별그림이 인공기(人共旗)의 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남산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것이 한심해서』 또 『세계적 만화작가와 겨뤄보기 위해』 미국에 간 金씨는 찰턴코믹스의 전속작가가 되어 『샤이언 키드』등을 그 렸고 뉴욕의 주간신문인 『오프 브로드웨이』 등에서는 아트 디렉터로 활약했다.나중에 『아이언 호스』출판사 발행인을 역임하기도 한 그의 작품 중 『뱀파이렐라』는 프랑스어.스페인어등 17개 언어로 번역.출판됐다.
그는 『한국의 40대가 과거 「라이파이」를 보고 열광했듯 현재 미국의 30대들은 「샤이언 키드」를 보며 자랐다고 말할 수있을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고 소개했다.
귀국 동기에 대해 그는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를 미국에서지내며 보니 한국의 역사가 사실 초라하게 생각돼 만화가로서 나름대로 인생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우리 청소년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서와 기상을 심어주기 위해 귀국을 결심했다 』고 밝혔다.
이같은 마음은 81년 사업차 중국을 방문하던 중 우리의 상고사에 자연스레 눈뜨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때부터 그는 상고의 문헌을 섭렵하고 만주지역을 답사하며 『대쥬신제국사』의 구상을 가다듬었다.
『이른바 정사로 배운 것이 얼마나 초라하며,반면에 야사에 숨어 있는 우리 민족의 장대한 과거가 얼마나 가슴 벅찬 것인지 깨달았습니다.이를 정사의 공간으로 끌어내야겠다고 결심하고 구체화한 것이 「대쥬신제국사」입니다.』 아득한 신화의 공간을 포함해 민족이 살아 숨쉰 그 모든 공간에서 민족의 단위로 우리의 역사를 재구성하자는 것이고,특히 청소년들이 이를 모르면 우리 민족의 원대하고 힘찬 기상이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현재 마무리 중인 『대불전』도 서양인들이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잘 알듯 우리도 우리의 민족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처의 생애를 알아야겠다는 신념에서 그리게 됐다고 했다.
그의 회화극본은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는 만큼 철저 한 고증을 거치고 있다.소설가 김주영은 『나도 철저하게 현지답사를 통해 소설의 내용을 고증하지만 나의 만주 취재에서도 놓친 부분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는 그저 놀랄 뿐』이라고 했다.
경기도 용인에 아틀리에를 마련한 金씨는 자신의 성을 옛말에 하늘을 뜻하는 「」이라고 쓸 만큼 민족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헌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