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며 떠오르는 경험들 이어 곡 만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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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뉴에이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이사오 사사키(55·사진)는 ‘착한’ 아티스트로 통한다. 우선 착한 느낌의 음악을 만든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메인 테마였던 ‘원 파인 스프링 데이(One fine spring day)’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멜로디는 감수성을 자극하면서도 무리가 없다. ‘지오다노’ ‘엘라스틴’ ‘아시아나 항공’ 등의 광고에 들어간 그의 음악 또한 선율은 독특한 데도 튀는 느낌이 없다.

이달 새로 나오는 앨범과 다음달 공연을 위해 내한한 사사키는 하얀 셔츠와 재킷을 입고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정확하게 탄 가르마와 조용한 표정까지, ‘착한 모범생’의 이미지였다. 한 손에는 도쿄 유명 베이커리의 빵을 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만날 사람들을 위해 직접 사온 선물이었다.

“조용한 학자 같다는 말이요? 많이 들어요. 동그란 안경을 써서겠죠. 어머니 쪽 집안에 학자가 많긴 하지만….” 사사키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웃었다.

“원래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현립(縣立)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영어 등 외국어를 집중 교육하는 곳이었거든요.” 그의 삶과 음악 작업 또한 차분하고 여유롭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카이 워커(Skywalker)’의 작곡 과정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처음에는 이 여섯 개의 음만 떠올랐어요.” 양손이 이중창으로 연주하는 단순한 멜로디다. “이 부분만 몇십분 동안 계속 쳤어요. 그리고 어떤 경험들이 떠올라 곡을 이어갈 수 있었죠.” 그는 악보 없이 작곡한다. 생각나는 대로 음악을 전개하는 과정을 녹음해 전체를 정리한다고 했다.

이처럼 영감에 의존하는 작곡 방법은 그의 재즈 연주 이력에서 비롯한 것이다. 클래식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했던 그는 기타·플루트·오르간 등을 거쳐 19세에 재즈 피아니스트로 방향을 바꿨다. 스물두 살에는 뉴욕에서 재즈 앨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즉흥 연주를 중요시 하는 재즈풍이 그의 음악에 묻어나는 이유다.

사사키는 1999년 처음으로 한국에 앨범을 내놓은 뒤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모두 10장의 앨범을 내놓으면서 23만장 가까운 판매실적을 올렸다. 그는 또다른 일본 뉴에이지 음악가 유키 구라모토(57)와 함께 관련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구라모토는 일본의 ‘리처드 클레이더만’, 사사키는 ‘조지 윈스턴’으로 비유된다.

“10년 가까이 매년 한국에 왔죠. 연주횟수가 늘어날수록 듣는 사람 위주로 작곡 스타일이 바뀐 것 같아요.” 억지로 음악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경험·감정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또한 청중의 편안함을 배려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사사키는 “4년 전부터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연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을 위해 그는 10월 14일 대전에서 시작하는 전국 5개 도시 순회 공연에서 또 한번 ‘착한’ 선물을 마련했다. “관객 모두에게 CD를 선물할 생각이에요.”

존 레논의 ‘러브’,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주제 음악을 편곡해 일본에서 선물용 CD를 따로 제작해 온 것이다. 사비를 들여 2만여 장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이번 한국 공연에 83세가 된 어머니도 오시니, 그 기념으로 크게 한턱내는 겁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이 아주 맑았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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