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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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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프리카 대륙 동쪽 끝에는 코뿔소 뿔처럼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소말리반도(半島)라는 이름보다 ‘아프리카의 뿔’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한반도 면적의 9배쯤 되는 200만㎢에 소말리아·에리트레아·지부티·에티오피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 동쪽은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지만 대부분 먼지만 날리는 건조 지역이다. 잦은 가뭄으로 주민들은 늘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또 국경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1982~92년 이 지역에서 전쟁과 기근으로 죽어간 주민이 200만 명에 이른다. 특히 84년 한 해 동안 에티오피아에서는 대기근으로 100만 명이 숨지기도 했다.

기근뿐만 아니라 오염된 식수와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다. 에티오피아에서 안전한 식수를 마실 수 있는 인구는 전체의 39%에 불과하고, 화장실 보급률도 29%에 머물고 있다.

이웃 소말리아의 사정도 나을 게 없다. 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부가 몰락한 후 군벌이 난립하면서 무법천지로 변했다. 2003년부터는 이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면서 우물을 차지하기 위해 부족 사이에 살육전이 벌어지곤 한다. 남자들은 ‘우물 전사(戰士)’가 될 수밖에 없고, ‘우물 과부’가 된 여자들도 늘고 있다.

최근에도 계속되는 극심한 가뭄에다 국제 식량 가격마저 치솟으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는 올 7월에 에티오피아 주민의 12%인 1030만 명, 소말리아 260만 명 등 주민 1400만 명이 굶주림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달 초에도 유니세프는 이곳 어린이 300만 명이 죽음과 질병, 영양실조 위험에 처해 있고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소말리아 지역 군벌과 주민들은 해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동식 로켓포나 유탄발사기를 들고 연안을 지나는 외국 선박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고 있다. 한국 선원·선박의 피해도 잦다. 2006년에는 동원호가, 이달에는 한국 화물선 브라이트 루비호가 납치됐다. ‘아프리카 뿔’이 세계를 들이받고 있는 형국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올 6월 외국 정부가 소말리아 영해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지만 소용이 없다. 해적을 근절하려면 이곳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강찬수 환경전문기자